마음을 빼앗긴 이스라엘(4장6-19)
오늘 이 시대는 말씀은 많으나 말씀이 없는 시대입니다. 이 말은 많은 말씀이 증거가 되지만 바른 말씀을 증거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바른 말씀이 증거 되더라도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많지만 우리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 가운데 말씀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호세아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열심은 있었지만 말씀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4장 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고 했습니다.
또 호6장 6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8장 12절에는 “12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말씀을 버리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합니다(6절).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그렇게 열심인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되었습니까?
1)표면적인 이유가 호4장 7절에 있습니다.
7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번성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물질적으로 부요하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무조건 가난하게 살아야합니까? 우리가 가난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찾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적으로 풍요하신 분인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물질의 풍요를 가지고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열심히 그 물질로 이웃을 섬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번성하기 때문에 말씀을 버리는 것도 표면적이 이유가 되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백성이 번성하는 것보다 더 큰문제가 11절에 있습니다.
2)11절입니다.
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외에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하고 있습니까?
음행와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겨서--그들 마음 가운데 전혀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말씀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디에 마음이 빼앗겼다고 합니까?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입니다.
그들은 간음을 통하여 성적인 쾌락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니 그들 마음가운데 도무지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습니다.
또 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포도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완전히 그들을 취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포도주 몇 년산인가 내일은 포도주가 몇 년 산인가--하고 또 오늘은 새 포도주인가 라고 하면서 포도주에 취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도무지 그들 마음 가운데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완전히 그들의 마음이 빼앗긴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빼앗기게 되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영적 간음의 죄를 짓습니다.
12절,13절을 보십시오.
12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13 저희가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17 에브라임(이스라엘의 대표지파)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마음을 음행과 포도주에 빼앗긴 이스라엘은 육신적인 음행만 아니라 우상을 섬김으로 영적으로 음행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도 이 말씀에 비추어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줄 깨달아야합니다.
12절에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가를 깨달아야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온통 우리 마음이 돈에 빼앗겨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합니다.
또 음란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겨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합니다.
음란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면 4가지를 잃게 됩니다.
첫째는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단 마음(하나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둘째는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를 떠나게 합니다.
셋째는 우리 안에 구원의 즐거움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넷째로 우리 안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원하는 마음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이런 음란한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그 외에도 우리마음을 빼앗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지나친 염려가 우리 마음속에 말씀을 빼앗아가는 가시라고 합니다(마13장). 내일 일을 위해서 지나차게 염려하면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현실이라는 우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보다 더 큰 현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교회조차도 말씀대로만 하면 성장을 안 된다는 현실적 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합니다. 또 인애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구약 이스라엘이 말씀을 버려서 망하게 되었다는 이런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현실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말씀을 외면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실패한 이스라엘백성들의 말입니다. 그들도 현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알을 섬길 수밖에 없었고, 또 음행을 하고 술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현실을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단순히 돈입니까? 바알입니까? 사람입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지금 이 현실세계를 주관하시는 분도 바알이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져야할 마음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광야의 마음입니다(호2장14-15). 광야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2)젖뗀 마음입니다(시131). 젖뗀 마음은 하나님을 찾을 때 젖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제 젖을 뗏기에 젖이 아니라--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그 무엇이 아니라--오직 하나님 그 자체--하나님 말씀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젖땐 마음이 필요합니다.
3)그 다음에는 적용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철저히 적용하는 마음으로 들어야합니다. 누구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말씀으로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날마다 내 삶속에 구체화시켜야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내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됩니다.
또 그 다음에는 그 말씀대로 적용하며 살아야합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말씀이 내 삶속에서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붙들고 당신이 한 이 행동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물으면 그 행동의 동기로 들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말씀대로 살아도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말씀만이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신학 > 설교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밖에 나의 복이 없나이다(시16:1-11) (0) | 2012.12.31 |
---|---|
죽음에 이르는 죄③ 게으름을 이기는 길(롬12:15) (0) | 2012.12.28 |
죽음에 이르는 죄② 시기를 이기는 길(약3:14-16) (0) | 2012.12.23 |
죽음에 이르는 죄① 분노를 이기는 길(야1:19-21) (0) | 2012.12.15 |
불평과 건전한 비판(빌2:14-15) (0) | 2012.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