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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불평과 건전한 비판(빌2:14-15)

by 금빛돌 2012. 12. 8.

사람은 울면서 태어나, 불평하며 살다가, 실망하며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각자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만 열면 불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불평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 불평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이 불평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불평이 없었다면 우리사회가 이렇게 발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불만제로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소비자 고발프로가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시민이 불평했기에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이라는 것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씀하실 분도 있습니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불평과 건전한 비판은 구분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불평과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는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공동번역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14.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는 불평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불평을 하지 말아야합니까?

1)불평은 우리의 인생을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허무한 인생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큐티를 하고 있는 민수기서 1장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대략 60만명이었습니다. 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그런데 40년이 지난 뒤에 이스라엘백성들의 숫자가 나옵니다. 26: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40년 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의 숫자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한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하며 40년을 보낸 것은 고난이 아니라 고생이었습니다. 고난과 고생은 다릅니다. 고난 뒤에 항상 영광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생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도, 나중에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고생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이스라엘백성들처럼 광야에서 40년을 사셨다면 어떻게 사셨겠습니까?

혹시 우리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40년 동안 불평하며 살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고난이 아니라 고생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허무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불평이란 우리의 인생을 고생만 하다가 허무하게 살게 합니다. 그래서 불평하지 말아야합니다.

2)또 불평은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여기에 어항이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어항의 물이 깨끗하겠습니까? 아니면 더럽겠습니까? 가만히 두면 깨끗해 보입니다. 그런데 흔들면 더러워집니다. 불평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어항과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깨끗해 보입니다. 그런데 흔들면 모두 더러워지게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교회가 바로 그랬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 문제의 근원은 시기와 질투로 인한 불평이었습니다.

/누가 앞에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면 뒤에서 시기하고 질투하여, 잘못한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면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지쳐서 쓰러져서 아무 일도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불평하던 사람이 앞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시기 질투하여 불평을 합니다. 그러면 또 앞에서 일하던 사람이 지쳐서 쓰러져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불평은 교회에서 아무도 앞장서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모두 방관자가 되게 합니다. 모두 구경꾼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불평이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 공동체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교회에서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3)불평은 하나님의 안식과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불평하는)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불평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불평하는)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이 말씀에 보면 불평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11). 12절에 보면 불평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평은 죄라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의 안식과 평안을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여기서 안식은 구약성경에서 가나안땅을 의미합니다. 가나안땅은 축복의 땅입니다. 그래서 불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가나안땅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불평하는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불평하면서 살아갑니까?

우리가 불평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불평하게 되는 근본적은 원인을 잘 분석해야합니다.

1)왜 사람들이 불평하면서 살아갑니까? 특별히 예수 믿는 우리들이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꿈과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땅에 때한 꿈과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문제 때문에 불평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가 가져야할 가장 궁극적인 꿈과 비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동부제일교회 비전선언문을 제가 조금 바꾸어 보았습니다. 제목도 동부제일교회 꿈선언문이라고 해보았습니다.

동부제일교회 꿈 선언문-동부제일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성도(BLESSING), 교육으로 예수님을 닮는 제자(EDUCATION),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LIGHT), 새 생활, 새 언어로 삶이 변화되는 교회(new LIFE)가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의 종소리(BELL)를 울리는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가나안땅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제자입니다. 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입니다. 또 삶이 변화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복음화입니다. 이런 우리의 꿈과 비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불평하지 말아야합니다.

2)또 사람들이 왜 불평을 합니까? 윌 보렌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불평함으로 얻어지는 이득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에게 동정과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평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게 합니다. 또 관심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불평은 마치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은 한번 맛을 보면 중독이 됩니다. 끊기가 어렵습니다. 불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은 사람들의 관심을 나에게 집중을 시키는 마약과 같습니다.

/또 윌 보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평이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불평을 합니까? 그 일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말만 하고 그 일은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평의 원인입니다.

/이와 같이 불평은 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것입니다. 또 불평은 나는 말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한 책임회피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평은 나에게 이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평은 결국 자기 자신 망하게 합니다. 또 불평은 우리 영혼도 망하게 합니다. 나아가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여 공동체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그래도 이 세상은 불평할 것이 많지 않느냐고 생각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불평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 없는 세상이란 독제시대 때와 같이 사람을 무뇌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불평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건전한 비판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과 건전한 비판을 잘 구별하며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면 불평과 건전한 비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1)건전한 비판이란 객관적인 진리에 근거해서 있는 사실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평이란 객관적인 진리의 사실 보다 무조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인격을 헤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평입니다.

//우리는 건전한 비판을 한다고 하면서 확실한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이면 무조건 찬성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이면 무조건 반대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건전한 비판일 경우에는 결코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객관적인 진리의 사실에 근거해서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평의 경우에는 절대 그 앞에서 개인적으로 바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뒤에서 말을 합니다. 이것은 불평입니다.

/우리가 말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건전한 비판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을 해하기 위한 불평입니까?

2)또 건전한 비평과 불평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불평에는 꿈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에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흑인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데 대해서 불평만 했다면 어떻게 말을 했겠습니까?

나에게는 불평이 있습니다. 노예의 아들들과 주인의 아들들이 함께 손을 잡지 못하는 이 현실을 불평합니다. 인격의 기준이 아닌 피부색깔로 평가를 받는 이 세상을 불평합니다”. 이렇게 불평을 했다면 미국사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킹 목사님은 흑인이 차별받는 세상에서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평대신에 꿈을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옛 노예의 아들들이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손을 잡고 형제처럼 사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피부의 색깔이 아닌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 받는 세상이 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평을 꿈으로 말하니까 그 꿈대로 흑인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가정이나 교회나 이 사회에 대해서 무언가 문제점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불평 하지 마시고, 그 문제 가운데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에서 자녀에 대한 불평이 있다면, 그 자녀에 대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가정에서 남편에 대한 불평이 있다면, 남편에 대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자라나는 다음세대(청년)들에 대해서 불평이 있다면, 다음 세대(청년)에 대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귀납법적 성경연구세미나에서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왜 목사가 되었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다니시던 교회가 너무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교회에 대한 문제를 교회에 대한 불평으로 가지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문제 때문에 성경적인 교회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들을 가지고 불평하지 마시고,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에 대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가 불평이 아니라 꿈이 됩니다. 또 그 꿈은 우리로 기도하게 합니다. 또 그 꿈은 우리로 노력에게 합니다. 일하게 합니다.

/그래서 건전한 비판은 우리에게 꿈을 가지게 합니다.

3)또 건전한 비판과 불평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불평이란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이란 몸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의 차이는 말과 행동의 차이입니다. 거짓선지자는 말로서만 비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선지자 노릇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문제가 있을 때 말로서 비판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비판합니다.

/갈렙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무도 가나안전쟁에 나가려 하지 않을 때 불평하지 않고, 그 자신이 제일 힘든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또 말년에는 가나안 전쟁에 나가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평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몸으로 비판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누가 서로 높으냐를 가지고 싸우는 제자들에게 왜 서로 섬기는 자가 되지 않았느냐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서로 높으냐를 가지고 논쟁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은 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일어나서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것이 건전한 비판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신다면 먼저 사랑의 본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섬김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먼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교육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교육기관으로 와서 섬기시기 바랍니다. 전도가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전도하는데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훈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기도가 부족하다고 느끼시면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제일 많이 불평해야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과 제자들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불평의 문제들을 자신의 몸으로 안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면 건전한 비판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떻게 되어야합니까?

먼저 잘못된 반응입니다. 건전한 비판이 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또 건전한 비판이 있을 때 항상 모든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입니다. 또 건전한 비판이 있을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펄펄 뛰는 것입니다. 또 건전한 비판이 있을 때 변명하는 것입니다. 또 건전한 비판을 받을 때 한숨 쉬고 탄식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전한 비판에 대한 잘못된 반응입니다.

그러면 건전한 비판에 대한 바른 자세는 무엇입니까?

건전한 비판을 나의 영적 유익과 성장의 도구로 사용해야합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밤늦게까지 혼자서 이스라엘백성의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그때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건건한 비판을 했습니다. 혼자서 재판하지 말고,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재판을 나누어서 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런 건전한 비판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의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누가 나에 대해서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흥분하거나 도피하거나 낙심하거나 변명하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이 나를 위해서 옳고 정당한 비판이라면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러면 나에게도 유익이 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건한 비판을 잘 받기 위한 10계명이 있습니다.

1)건설적 비판인가 파괴적 비판인가를 구별하십시오. 2)파괴적인 비판을 너무 심각하게 받지 마십시오. 3)비판하는 내용보다 비판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4)비판하는 사람을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5)좋은 사람들도 다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6)비판을 받을 때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잘 유지하십시오. 7)비판하는 소수를 보지 말고 좋아하는 다수를 보십시오. 8)비판이 만일 잘못되었을 때는 그 비평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될 때를 기다리십시오.

9)비판이 있을 때도 격려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십시오. 10)건전한 비판을 받았을 때 실수는 인정하고 사명에 집중하십시오.

또 건전한 비판을 하기 위한 십계명이 있습니다.

1)비판하는 동기를 살피십시오.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잘 되게 하기 위한 사랑의 동기로 비판을 해야 합니다. 2)비판하는 내용이 가치 있는 정말 중요한 내용인지를 살피십시오.

3)대안을 가지고 비판을 하십시오. 4)비판할 때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5)비판할 때 절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6)입이 아니라 몸으로 비판을 하십시오.

7)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문제를 비판하십시오. 8)비판하는 타이밍을 주의하십시오.

9)비판 끝에 반드시 격려하십시오. 10)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피십시오(7:12).

하나님 앞에서 사는 나의 티가 들보처럼 보이고 남의 들보가 티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남의 티가 들보처럼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내 안에 들보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비판하는 그 모든 것이 나의 문제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먼저 비판하고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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