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기도회에서 정유나 자매가 간증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일성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권사님이고, 외할아버지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절대 그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자들을 염두하고 쓴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지식만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구원파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구원파에서도 구원에 관한 지식만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회개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일서에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회개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은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삶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단순히 이론적인 신으로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오늘날로 말하면 이신론(理神論)이라고 합니다.
이신론(理神論)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살아계신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리와 이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니까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원리 가운데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 하늘의 별들이 서로 출동하지 않고 질서 있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작은 세포도 정확한 원리가운데 움직이고 있습니까?
그래서 절대 이 세상은 그냥 자연에 의해서 우연히 돌아가는 것이 하나의 원리가 있어서 그 원리에 따라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리와 이론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것이 이신론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하나의 원리이고, 이론이지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신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 사귄다, 교제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들이 바로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일서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남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4절에서도 “요일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사귐으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
저도 모태신앙이라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것은 길을 가다가 어느 교회에서 들어가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내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이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평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하나님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날마다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 삶에 중심의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사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귀고 교제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날마다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만나고 사귀고 교제하시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더 알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알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까?
본문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만남으로)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만남으로 알았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까?
우리는 그 계명을 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계명이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한 율법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를 (만남으로) 아노라 하고 그의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알았다고 하고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또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누구든지 그의 (사랑하라는) 말씀(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누구든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공동번역에서는 “5.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서로 사랑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고 합니다.
그리고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안에서 산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행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서 사귀라는 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서 사귐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그 아들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계명을 지킬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에도 영지주의자들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한 번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한 번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율법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수십 가지 율법적 규칙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율법적 규칙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조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지금도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분으로 믿고, 그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안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날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알았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내 안에서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그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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