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요한일서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일서는 요한복음과 거의 비슷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a.d.9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이미 사도요한을 제외하고 모든 사도들이 순교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기였습니다. 이때 초대교회에 이단이 들어왔습니다. 그 이단은 영지주의라는 이단입니다.
요한1서 2:18절과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2:18.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들이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2:19.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영지주의자들이 초대교회에 들어왔다고 지금은 나간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이 초대교회에 들어왔다가 나가지만 그들의 사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일서 4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들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들이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들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은 어떤 영입니까? 사탄의 영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사탄의 영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어떤 주장을 했습니까? 그 다음 2절과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적 그리스도의 영인 사탄의 영이라고 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시지 않고 영으로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19장을 보시면 “요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시지 않고 영으로 오셨다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직접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게 하려 함이라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했습니까?
영지주의들은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악한 육체를 입고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오셨고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 오신 분이라고 하면 절대 우리 죄를 대신 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자 완전하신 인간이라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라면 절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인간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절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대신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완전하신 인간으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을 분명히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줄 수 있는 분으로 분명하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들은 영적인 지식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지식적으로만 믿었습니다. 머리로만 믿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머리로만 믿었습니다. 지식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만남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지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음속이 아닌 머리 속에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머리와 지적으로만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고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고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은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영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7장에서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지식적으로만 안다면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만남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분과 사귐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사귀고 계십니까?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사랑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무엇을 강조합니까? 사랑입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하나님과 사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과 열심히 사귀지 않아서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여러분에게 흘러넘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고 지시적으로만 아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자로서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이것을(요한일서를) 씀은 우리의 기쁨(하나님과 사귐을 통한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기쁨은 사람에게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서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영지주의자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데, 지식적으로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영지주의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지식적으로만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살아)있고 전에도 (살아)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1:17하—나(예수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예수님)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여기서 예수님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살아 있다는 것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귀로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합니다.
왜 사도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까?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단순한 어떤 지식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가 귀로 들었고,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자세힌 만진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은 지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신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이 생명(예수님)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육체를 입고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사도 요한과 사도들이 직접 보았고, 증언하였고, 너희에게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으로) 누림이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누구와 누가 사귐이 있게 하려 합니까?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 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는 이 글을 쓰는 사도 요한과 그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에 대하여 전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귐 즉 교제가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으로 누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사귐이란 이 글을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들과의 사귐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우리의 사귐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불어 사귐으로 누림이라고 말하고 있겠습니까?
이것은 가장 쉽게 그림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보시면 나와 너 즉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귀고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때 단순히 나와 너가 서로 만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우리끼리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하나님을 만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보시면 내가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또 네가 하나님께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면 나와 너 즉 우리가 어디에서 만납니까? 하나님 안에서 만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안에 어떻게 진정한 사귐과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이 우리끼리만 서로 만나서 사귀고 교제하는 것은 진정한 교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서로 진정으로 사귀고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각자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각자가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사귐은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사귈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으로 인한 기쁨을 누릴 때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서로 사귀고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없고, 예수님도 없이 우리끼리만 서로 만난다고 진정한 사귐과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예배 시간에 각자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예배 시간에 각자가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과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을 누림으로 우리 안에 진정한 사귐과 교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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