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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요한1,2,3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요일5:14-17)

by 금빛돌 2014. 5. 3.

오늘 본문 14-17절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란 14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14,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합니다.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을 때 우리가 구하는 바를 들어주십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을 때 우리가 구한 것을 얻은 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도 직분자를 선출하기 위해서 투표를 하는 것도 이 공동체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의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않았을 때 양심에 거리낌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마음이 참으로 평안하냐 아니냐를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내 양에 조금이라도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뜻은 이 세 가지가 모두 합해졌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내 양심대로 옳다고 하는데, 믿음의 공동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내 양심에 옳다고 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믿음의 공동체와 나의 선한 양심이 서로 일치를 이룰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실 때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또 두 번째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연약한 자를 위한 기도입니다.

16절을 보면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기도하라)고 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란 연약하여 짖는 죄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우리가 연약하여 실수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얼마든지 그것에 대해서 용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약하여 실수로 짓는 죄가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이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기도를 하지 않노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는 죄란 어떤 것입니까? 사망에 이르는 죄란 그것이 분명한 죄인대도 죄로 여기지도 않고 강퍅하게 짓는 죄가 있습니다. 이런 죄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사랑의 사도인 사도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7절에서 또 말합니다.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연약하여 짓는 죄에 대해서는 서로 용서하는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무엇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입니까? 분명한 죄인대로 죄로 여기지도 않고, 강팍하게 짓는 죄에 대해서도 무조건 용서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불의와 죄를 용납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란 그 사람이 말씀대로 살고자 하지만 연약하여 실수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불의이고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약하여 짓는 죄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에 의해서 부흥했지만, 기도에 의해서 망하고 있다고 어떤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는 무조건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절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또 연약한 자이 아니라 강퍅한 자를 위하여 무조건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불의를 용납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사도요한은 오직 사랑만을 부르짖는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사랑의 사도인 사도요한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또 강퍅한 자가 아니라 연약한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고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하시는 그런 기도를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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