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연구/에베소서

에베소서(1)문맥으로 보는 에베소서(엡1:1-2)

by 금빛돌 2024. 8. 28.

오늘 제목을 문맥으로 보는 에베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은 문맥입니다. 특별히 에베소서는 문맥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단들은 항상 성경의 문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맥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문맥으로 성경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문맥이라고 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문장의 구성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가 방에 들어간다고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문장의 주어입니다. 그리고 동사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문장의 주어가 무엇입니까? 철수입니다.

그러면 동사가 무엇입니까? “들어간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어와 동사만 바로 알면 이 문장을 이해하기가 쉽니다.

철수가 방에 들어간다는 문장은 가장 간단한 문장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더 복잡하게 만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교에 갔다 왔던 철수가 방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학교에 갔다 왔던 철수가 기도하기 위해서 방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문장에서도 주어가 누구입니까? 철수입니다. 그리고 철수를 수식하는 말은 학교에 갔다 왔던입니다.

또 이 문장에서도 동사 들어간다입니다. 어디에 들어갑니까? 방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왜 들어갑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문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어가 누구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주어가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그러면 동사가 무엇입니까? “편지한다

그러면 여러분 주어인 바울을 수식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 된바울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편지를 하는데, 누구에게 편지를 합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안에서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합니다.

왜 편지합니까? 편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신한 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 위해서 편지를 합니다.

그러면 그 은혜와 평강은 누구로부터 나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이 문맥을 통해서 본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에베소서를 보면서 항상 이 문장의 주어가 누구인지, 동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어와 동사를 수식하는 말을 살펴보면 문맥으로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본문의 주어가 누구라고 했습니까? 바울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란 바울이 누구에 의해서 사도가 되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해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습니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누구의 뜻 때문입니까?

바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것은 누구에 의한 것입니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직분을 받은 것은 누구의 뜻입니까?

나의 뜻입니까? 사람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직분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이 직분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기에 이 직분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장에서 보면 성도를 온전하게 함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성도들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의 상처를 치유해 줌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직분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절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처를 치유는 직분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직분을 받았습니까? 그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무너지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받은 직분대로 성도를 더 온전하게 하고, 교회를 잘 세워나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주어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에 의해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문장의 동사가 무엇입니까? “편지하노니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편지합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합니다.

여기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진실하게(신실하게) 믿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고 합니다.

여기서 먼저 바울은 이 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누구라고 합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란 구별된 무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에베소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에베소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저도 튀르키예에 있는 에베소를 가보았습니다. 그 곳에 가니까 예전에 항구가 있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항구 앞에 원형경기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길이 다 돌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굉장한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당시에 상업이 발달한 에보소는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또 우상숭배가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업이 발달해서 음란하고 우상숭배가 있는 도시 가운데서 이 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에베소 교인들이 음란하고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 가운데 다르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은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자들이란 먼저 예수님을 확실하게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음으로 그들의 삶이 확실하게 변화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에베소서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또 믿더라도 신앙이 어린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확실하게 믿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삶이 확실하게 변화된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고, 삶이 확실하게 변화된 자들에게 왜 에베소서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에베소교회가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았지만 교회 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유대 율법주의자들로 말미암은 갈등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했는데, 이것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유대 율법주의자)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유대 율법주의자)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14. 그는 우리(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평이신지라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계명의 율법)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왜 계명의 율법이 원수 된 것입니까? 왜 계명의 율법이 중간에 막힌 담입니까? 우리에게 계명의 율법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율법은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에베소 교인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율법주의에 빠지기가 쉽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율법적인 규칙으로 사람들을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기가 쉽니다. 그로 말미암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에베소서를 보면서 다시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에베소서를 통해서 우리가 다시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신실하게 예수를 믿지만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한 에베소교인들에게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을 주기 위함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 평강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평강이란 전쟁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평강이란 하나님께서 외부의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심으로 전쟁이 없이 고요하게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평강이란 아직 외부에 전쟁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심령의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이 두 가지 평강이 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외부적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심으로 아무 려움이 없는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혹 우리의 외부적인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있을 있는 심령의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이 은혜가 누구로부터 주어집니까? 이 평강이 누구로부터 주어집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아버지로 모심으로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을 여러분들의 삶의 주인으로 모심으로 여러분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