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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에베소서

에베소서강해(23)새 사람의 생활(엡4:25-32)

by 금빛돌 2022. 10. 8.

파출소 옆에 꽃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이란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옷을 입는다는 말은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처럼 연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의 생활과 입어야할 새 사람의 생활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여기서 그런즉이란 24절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새 사람으로 옷을 입었은즉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무엇을 버려야합니까?

거짓말을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새 사람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말을 해야 합니다.

//새 사람의 제일 첫 번째 생활을 거짓말을 버리는 생활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신뢰관계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진실 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사람들 앞에 서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하고 진실 된 이야기만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게 유익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항상 진실 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는 예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우리가 서로 거짓을 버리고 진실만을 말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거짓을 말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의 생활은 어떤 것입니까?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여러분 이 말씀은 분을 내라는 말씀이겠습니까? 내지 말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분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분을 내어도 죄는 짓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합니다. 여기서 해가 진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분을 내더라도 그 분이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만일 우리의 분노가 하루를 넘기면 반드시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은 분노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31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이 말씀에 보면 모두 분을 내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주석책에 있는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악독이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 속에 품어 두어서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 상태이다”(8:23; 3:14; 12:15; 3:14)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노함이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서 급격한 감정 폭발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후 12:20; 5:20),

'분냄'이란 통렬하고 악독한 적의가 마음에 자리 잡아서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표현되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딤전 2:8; 1:19, 20).

또 떠드는 것도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훼방하는 것도 분을 내어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적 언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7:22; 3:8; 딤전 6:4; 딤후 3:2).

-그래서 이 모든 말을 한 마디로 하면 분노을 버리라고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말씀이 그 어떤 분노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의분도 있습니다.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형들에게 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시는 하나님과 그 군대를 모독하느냐 하면서 의분을 가지고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다음에 창세기를 볼 때 같이 보겠지만 시므론과 레위가 나옵니다. 이들은 한 형제로서 동생 디나라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지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세겜의 모든 사람들 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들에 대해서 좋지 않게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레위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출애굽기에서 금송아사건 때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 편에 있을 것인가 저 우상 편에 있을 것인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레위지파가 모두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32:26). 그리고 하나님께서 레위지파에게 우상의 편에 있는 사람들을 다 칼로 쳐서 죽이라고 합니다(32:27). 그래서 레위자손들이 그대로 행합니다(32:28). 그때 모세가 레32:29절에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레위자손)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레위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가문이 됩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분노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분명 의분도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고 합니까? 또 왜 분을 내어도 하루를 넘기지 말라고 합니까? 우리가 처음에는 의분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으로 나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풀지 않고 하루를 넘기도 또 하루를 넘길 때 나중에는 의분이 아니라 단순히 미워하는 감정만 남습니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에 마귀가 틈이 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절대 유교가 아닙니다. 유교는 무조건 참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거룩한 분노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을 내어도 그것이 절대 미워하는 죄를 짓는 방향으로 나가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4: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분노함으로)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분노함으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분노함으로 인한) 죄를 다스릴지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은 그 분노를 죄 짓는 방향으로 가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은 분노로 인한 죄를 다스릴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분노로 인한 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1)첫째, 원수 갚은 일을 하나님께 다 맡겨야합니다.

분노의 감정에는 내가 악에 대한 심판자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심판자에 되어서 악을 심판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악에 대한 모든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롬1219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심판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두 번째,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의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은 용서해야합니다.

우리는 분노할 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미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미워해야할 것은 죄이지, 절대 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분노해야하지, 사람에 대해서 분노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노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복수하려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용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라는 말은 체포된 상태에서 풀어준다(,아페시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는 분노의 당사자와 대상자 모두를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롭게 풀어주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화해란 서로 모두 용서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화해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는 용서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이 자유할 수 있습니다.

3)또 사람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분노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기대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기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4)내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그 어떤 인간의 생각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교만을 버려야합니다. 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내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버릴 때 우리는 분노를 이길 수 있습니다.

5)우리의 모든 분노를 하나님 앞에서 풀어야합니다. 분노를 이길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분노를 쏟아내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시편들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했습니다. 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너그럽게 하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기는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곤란 한 중에서 나를 너그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이 너그러울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 그래서 다윗은 내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은혜를 받고 나니까 분노가 풀리고 마지막에 어떻게 말합니까?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그래서 분노를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분노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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