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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에베소서

에베소서강해(24)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5-18)

by 금빛돌 2022. 10. 22.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성령하나님이 어떤 분이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맨 먼저 성령 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은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체험시켜 주는 분입니다. 여기 꽃이 있습니다. 이 꽃 속에 꿀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꽃 속에 꿀은 우리가 어떻게 맛볼 수 있습니까? 꽃과 우리 사이에 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벌을 통해서 꽃 속의 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하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맛볼 수 없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5절에 5:5--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하나님은 어떤 기분이나 감정, 또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인격은 지정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지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만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우리에게 알게 해주십니다(김용옥).

또 성령은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탄식하고, 우리가 그를 무시하면 우리 안에서 아무 역사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가만히 계십니다. 마치 예수님도 자기를 무시한 고향에서 아무 역사를 행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아주 민감한 감정을 가지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성령은 구체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또 성령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성령이 들어가서 비로소 육체의 생명을 입게 되었고, 또 영적 생명도 가지게 되었습니다(27).

그런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이제 인간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63절에 보면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인간들에게는 성령이 떠나버렸습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를 보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그가 범죄하면 성령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 했을 때 그가 기도하기를내게 성신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신약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죄악과 육체의 정욕대로만 사는 인간들에게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들어오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성령이 지금 거하여 계십니까?

비록 우리가 죄악 되었지만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의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인하여 성령이 우리 안에 지금 거하여 계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 증거는 특별한 체험이 아닙니다. 내가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또 전기에 감전된 듯한 체험이 없어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이 거하신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내게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없으면 못삽니다. 예수님은 내 삶의 전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는 성령이 거하여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제가 성령 충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전에 성령에 관한 기본적인 말씀을 다 드렸는가 하면 제가 앞에서 말씀을 드렸던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는 성령 충만 하기만 하면-반드시 어떤 은사나 기적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 충만하면 은사나 기적이나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 기적적인 은사가 없더라도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미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인격과 삶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성령 충만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성령님의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안에서 성령님이 자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자고 계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호들갑을 떨어서 강청하여 깨워서 역사하게 만들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성령 충만에 대한 제일 큰 오해입니다.

/성령하나님은 분명 예수 믿는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의 삶을 성령의 뜻대로 인도하려고 하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성령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계십니다. 능력을 불어넣어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뜻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책임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우리에게 성령 충만에 대해서 말씀하기 전에 술 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여기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예수를 믿고 그 안에 성령이 임재 해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당시에도 성도가운데서도 술 취한 성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오늘 본문에서 성령 충만을 말씀하기 전에 우리에게 술취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성도의 술 취함과 방탕한 생활이 성령이 우리가운데 충만히 역사하는 것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출신인 설교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술은 자제력, 이해력, 분별력, 판단력 등 사람답게 행동하게 하는 모든 좋은 요소들을 마비시키고, 반면에 본능적인 저급한 요소들을 부추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술에 취하는 것은 방탕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 본문에 말씀하는 방탕이란 말은 행동의 결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술에 취하면 무절제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들도 일단 술에 취하면 자제력을 잃고 성령의 뜻과 상반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 만일 성도님들 중에서 아직 술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분들은 빨리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여러분 삶 가운데서 계신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고, 그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마음속에 나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안심이다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기 술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훼방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앞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금까지 에베소서에서 하신 말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취함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2절부터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육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교만과 완악과 조급함으로 작은 것이라도 절대 용서하거나 용납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 성령의 하나 되게 하려는 뜻을 훼방하여---끊임없이 다투고, 싸우고 분열시키려는 마음입니다. 사실 술 취하고 방탕한 것 보다 더 이것이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고 훼방하는 문제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겸손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성령은 우리에게 온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거스르고 훼방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15-17절을 보면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거스르고 위축시키는 것은 지혜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뜻에 민감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기분과 감정대로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기분과 감정대로 살아가면 아무리 성령충만하려고 해도 성령충만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억지로 성령충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감정충만 기분충만이지 결코 성령충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게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까?

그것은 510절에 있습니다.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내 기쁨 내 만족 내 기분이 아니라, 과연 이 일이 하나님이 기쁘하시는 일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를 면밀히 시험해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안에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시 성령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또 성령은 우리 속에서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충만히 역사할 준비를 다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문제일수도 있고, 공동체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이 성령의 뜻을 거스러고 성령을 근심시키고 훼방하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또 우리 개개인이 아무리 성령의 뜻대로 살려고 해도 우리 공동체가 서로 성령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 개개인도 성령충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잘 깨닫고 성령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과 교회안에 게신 성령이 마음껏 춤추실 수 잇도록 내어 드리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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