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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호세아

호세아강해(4)말씀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호4:6-11,사28:1-13)

by 금빛돌 2024. 8. 23.

여러분들은 사람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시 그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이사야 28장부터 말하고 있는 유다의 형편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 백성을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역사를 통해서 많은 교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되는가를 유다 백성들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281절부터 6절까지를 보시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했는가를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28:1. 에브라임(이스라엘)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1절에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멸망했습니까?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멸망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제일 좋을 때 교만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시면 보게 " 28:3. 에브라임(이스라엘)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 백성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북쪽 이스라엘을 보라는 것입니다. 잘 살 때 교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아 멸망 받지 않았느냐 이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렇게 지금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TV 뉴스를 보면서 무엇을 보십니까?

가수 김호중이라는 사람이 가장 잘 될 때 공연을 앞두고 술을 먹고 비틀거리다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어떤 영화 배우도 가장 잘 나갈 때 방심하다가 엉뚱한 곳에 빠져서 죽는 것을 보지 않았으니까?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아 그렇구나 우리가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되는구나 술취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교만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유다가 똑같은 형태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북쪽 이스라엘을 보라 교만하다가 그 교만의 면류관이 밟힌 것을 보지 않았느냐 이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그래서 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지금 북 왕국 이스라엘이 술 취해 망한 것을 보고도 지금 남 왕국 유다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리하여도 이들은 술 취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제사장도 그렇고 선지자도 술독에 빠져 환상도 잘못 풀고 재판할 때도 실수하고 있습니다. 모든 상에는 술 먹고 토한 것이 가득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과 선지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백성들도 지금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선자자들이 술독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9절입니다.

28: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9. 그들이(유다백성) 이르기를 그(선지자)가 누구에게 지식(말씀)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말씀)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어린 아이)들에게 하려는가

지금 유다백성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선지자가 누구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선지자가 누구에게 말씀을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선지자가 우리를 마치 어린 아이 취급하려는가, 우리를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10절입니다.

28: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여러분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경계하는 것 아닙니까? 렇게 살면 망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또 교훈 말씀을 전하여 그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유다 백성들이 조롱하고 있습니. “선지자들이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또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또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말씀을 전하는구나. 왜 계속 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전하느냐” 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지가들이 하는 말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들에게 하신 첫째 말씀이 무엇입니까?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교만해서 멸망한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지도자들이 술취해 있고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하나님은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안 들 때는 내 백성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을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십니까? 이제는 알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안 들으니까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십니다.

28: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전에 하셨던 말씀을 하십니다. 전에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너희의 안식이요 상쾌함이 아니었느냐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해 상쾌함을 주기 위함입니다. 안식을 주기 위함입니다. 또 새 힘을 주기 위합니다. 또 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주고 능력을 주어 우리를 살리기 위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똑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하나님 말씀은 새로운 말씀이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말씀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조롱하는 말씀을 똑같이 전하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붙잡히게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교훈하십니다. TV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교만하지 말아야겠구나 잘 될 때 조심해야 되겠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지 않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니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경계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경계는 그렇게 하면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교훈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교훈은 그렇게 하면 잘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안식을 주기 위함입니다.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잘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이 왜 있습니까? 우리가 유다 백성들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 백성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참된 백성의 길로 걸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으며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경계와 교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상쾌함을 얻고, 새 힘을 얻고 안식을 얻고 삶의 용기를 얻어 말씀에 따른 온전한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다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호세아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열심은 있었지만 말씀이 없었습니다. 4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또 호66절을 보면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812절에는 8: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말씀을 버리니 하나님께서는 나도 너를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6).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그렇게 열심인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되었습니까?

1)표면적인 이유가 호47절에 있습니다.

4: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번성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 범죄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물질적으로 부요하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무조건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가난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찾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적으로 풍요하신 분인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물질의 풍요를 가지고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열심히 그 물질로 이웃을 섬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번성하기 때문에 말씀을 버리는 것도 표면적이 이유가 되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는 것보다 더 큰 이유가 11절에 있습니다.

2)11절입니다.

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외에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하고 있습니까?

음행와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겨서--그들 마음 가운데 전혀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또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겨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주일 아침에 그 전날까지 정말 피곤하게 사신 분들을 봅니다. 그런데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말씀에 더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분들은 전혀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마음이 빼앗겼다고 합니까?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줄 깨달아야 합니다. 4:14절에 4:14.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온통 우리 마음이 돈에 빼앗겨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배우 박신양은 드라마에서 대한민국에는 돈이면 다 됩니다. 낙타가 아니라 코끼리도 항공모함도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됩니다. 법보다 주먹 주먹보다 돈이 앞서는 세상입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하나님과 같이 전능한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온통 돈에 빼앗겨 있지 않습니까?

또 음란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겨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음란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면 4가지를 잃게 됩니다.

첫째는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하나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둘째는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를 떠나게 합니다.

셋째는 우리 안에 구원의 즐거움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넷째로 우리 안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 잃어버리게 합니다.

결국 이런 음란한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 마음을 빼앗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지나친 염려가 우리 마음속에 말씀을 빼앗아 가는 가시라고 합니다(13). 내일 일을 위해서 지나치게 염려하면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근심의 가시를 다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에게는 현실이라는 우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말씀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실 교회에서 바른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이 떠나게 되는데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말씀보다 더 큰 현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교회조차도 말씀대로만 하면 교회가 성장을 안 된다는 현실적 논리가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 인애 즉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구약 이스라엘이 말씀을 버려서 망하게 되었다는 이런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현실을 내세워서 말씀을 외면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입니다. 그들도 현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을 섬길 수밖에 없었고, 또 음행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술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현실을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단순히 돈입니까? 사람입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까?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지금 이 현실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은 어떤 사람이나 돈이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도 말씀대로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현실에서도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외면해도 교회가 잠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50년 뒤를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50년 뒤에도 그런 교회가 잘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의 논리를 내세워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것도 핑계요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광야의 마음입니다(214-15).

광야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배고파 죽을 수밖에 없고,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호215절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4.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그를 유인해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녀(이스라엘)에게 부드럽게 말할 것이다. 15. 내가 그곳(광야)에서 그녀(이스라엘)의 포도원을 돌려주고 아골(환난)의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할 것이다”(우리말 성경)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한 순간도 말씀이 없이는 살아갈 수다고 하는 광야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고 배고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광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광야의 마음을 여러분들에게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주고, 환난의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적용하는 마음이다. 마13장에서 돌 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는데--그 말씀을 우리 삶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적용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철저히 그 말씀을 내 삶 속 깊숙이 적용하면서 들어야합니다.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는 4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은 철저히 나 개인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만 가지로 들었으니 그 말씀을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를 위한 말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철저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적용의 원리는 말씀을 내 삶 속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말씀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어떤 환청을 듣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내게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적용했을 때 그것이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을 빼앗기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드라마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컴퓨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드라마나 컴퓨터를 절제해야겠다고 적용을 합니다.

그러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너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드라마를 절제하라, 컴퓨터 절제하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말씀 듣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하시는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가장 중요한 적용의 원리는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고의 성경공부가 무엇입니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듣는데 잊어버립니까? 그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떻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에게 속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하는 율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말씀에 따른 복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말씀대로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만이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행하여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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