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하신 세 번째 말씀이 나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씀입니다(눅23:34). 두 번째 말씀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눅23:39-43). 그리고 세 번째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는 말씀입니다(26).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남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여인들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십자가 곁에 네 명의 여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가자에 못 박았던 네 명의 로마 군인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이모를 다른 성경에서는 살로메(막15:40,마27:56)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예수님의 이모라고만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살로메가 이 글을 적고 있는 사도 요한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사도 요한은 이종사촌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고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여자여” 라고 합니다.
“여자여”라는 말은 “귀나이”라는 말로서 여성에 대하여 아주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여자여" 라고 했겠습니까?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뱀에게 너는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거기서 여자라는 말이 70인 역에서 "귀나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자여" 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말씀하는대로, 여자의 후손으로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는 메시아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또한 예수님은 육신의 아들로서의 본분을 다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7절에서 예수님과 이종사촌간인 사도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면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그 때부터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십니다. 터키에 가면 에베소에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모셨던 집이 있습니다. 저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일찍 순교했는데, 왜 사도 요한만은 하나님께서 오래 살게 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오래 살아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게 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모습과 마리아의 육신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단순히 마리아의 육신의 아들만 이었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육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완전하신 하나님이자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또한 완전하신 인간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또한 인간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참된 인간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때문에 인간이 된다는 것을 세상적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는데,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한 하나님의 아들이기만 하고 완전하신 인간으로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참된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적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함께 참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또한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육신의 자녀로서 완전한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신이 여자의 후손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구원하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여자여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동시에 완전하신 인간이시기에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 라고 하면서 육신의 아들로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요한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육신의 부모님에게는 소홀하면서 하나님만을 잘 섬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위로는 하나님의 공경하고, 또한 아래로는 인간으로서 도리는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광신도가 되어서 단순히 하나님만을 잘 섬기면 되고 인간으로서 도리는 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면서 살아감과 동시에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육신의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사람들에게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는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시면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한 가지 더 교훈을 얻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진정한 가족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합니다.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여러분 여기서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내 어머니다 그러니 잘 모셔라”
고 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십니다.
그때부터 요한에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니라 고 합니다.
여러분 이때 마리아에게 아들들이 없었습니까? 천주교에서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아들들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면 됩니다.
그러면 왜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십니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이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복음에서도 누가 진정한 예수님의 가족이냐고 했을 때도 단순히 예수님 육신의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막3:35).
막10장 29-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막1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 때문에 가족들을 잃어버린다면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엡2:16. 또 십자가로 (서로 떨어져 있는)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8. 이는 그로(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 떨어져 있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가족이라)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 새로운 가족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여러분들이 저의 어머니고 아버지이십니다. 또 옆에 있는 분들이 여러분들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한 가족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약성경연구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강해(57)다 이루었다(요19:30) (0) | 2024.06.01 |
---|---|
요한복음강해(56)내가 목마르다(요17:28-30) (0) | 2024.05.19 |
왕이 지신 십자가(요19:17-30) (0) | 2024.05.05 |
요한복음강해(54)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는가?(요19:1-16) (0) | 2024.04.27 |
요한복음강해(53)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에 나타난 사랑(요18:1-9) (1) | 2024.04.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