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3절에 “신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맹세를 할 때가 있습니다. 맹세는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것을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때 구약성경에서 어떻게 맹세하고 약속하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약속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고 약속한 것이 잘못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9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여러분 만일 거짓 맹세를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어떤 계명을 어긴 것입니까? 3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3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23장 23절에 보면 “신23:23. 네 입으로 말한 것(맹세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맹세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맹세한 대로) 행할지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내가 얼마를 드리겠다고 작정 헌금을 합니다. 보통 작정 헌금은 언제합니까? 교회에서 하자고 해서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떨 때는 하나님 이번에 제 기도를 들어주시면 내가 하나님께 얼마를 드리겠습니다 작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헌금은 하나님께 대해서 약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정리하여 말씀하십니까?
33. ○또 옛 사람(구약시대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약속)한 것을 주께(하나님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을 보면 맹세를 하라고 합니까? 하지 말라고 합니까?
맹세를 하라고 합니다. 단지 헛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참된 맹세를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맹세를 하면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34절입니다.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도무지”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온 줄 아십니까? 조선시대 형벌에서 나온 말입니다. 조선시대에 형벌을 내릴 때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고, 또 얼굴을 “도모지”라는 종이로 풀을 칠하여 붙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도모지로 인하여 도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무지”라는 말은 “절대로”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절대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적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하늘을 두고 맹세합니다. 또 땅을 두고 맹세를 합니다. 또 자신의 머리를 두고 맹세를 합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내가 저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 내가 저 땅을 두고 맹세한다. 내가 내 목을 걸고 맹세한다고 하면 괜찮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면 만일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두고 맹세한다면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맹세하지 않고 다른 것들로 맹세하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34절을 다시 보시면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고 하십니다.
하늘로 맹세해도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또 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하나님)의 성임이요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땅을 하나님의 발등상 즉 하나님의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루살렘 성으로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은 큰 임금이신 하나님의 성이기 때문입니다.
또 3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또 우리도 맹세를 할 때 내 목을 걸고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네가 머리카락을 한 터럭도 희게도 검게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또 하늘과 땅과 내 목을 걸고도 맹세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무엇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냥 할 수 있으면 예라고 대답을 하고 할 수 없으면 아니요 라고 대답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 말 속담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손에 불을 달아놓고 장을 지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손에 불을 달아놓고, 간장을 조리기 위해서 장을 지진다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래서 내 손을 불을 놓아 장을 지지는 것 같은 고통이 있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절대 그 맹세들을 잘 지키지 못 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고, 하지 못하면 하지 못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또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에서 지나쳐서 무엇을 걸고 맹세를 한다면 그것이 악에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은 절대 맹세하고 약속한 대로 잘 지킬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만일 나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내 목숨을 걸고 반드시 그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고 하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여러분 우리가 맹세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약 율법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보다 더 뛰어나신 분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변화산 상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율법의 대표인 모세를 동일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세와 엘리야를 구름을 가리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게 했습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만일 구약에서 하신 말씀과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면 어떤 말씀을 우선에 두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맹세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도무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시고,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율법주의를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너희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고 주신 말씀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율법적 규칙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내가 사람을 칼로 죽이지만 않으면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구약성경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참된 의미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구약성경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육체적으로 간음하지 않으면 간음하지 않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원래 구약성경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참된 의미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것을 두고 맹세하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하면 된다고 하는데,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마23:16.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이 없는데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구약성경에서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이 없는데, 그 예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적인 규칙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과 율법주의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절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율법주의로 바꾸었습니다.
율법과 율법주의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율법에서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과 생각으로 이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거룩에 대한 율법적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기 위해서 반드시 주일에 양복을 입어야 한다. 또 양복을 입으면 반드시 옷에 단추를 잠가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일에 가능하면 양복을 입고 오면 좋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조건 주일에 양복을 입고 와야 거룩합니까? 시민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여름에 사역자들도 양복을 입지 않습니다. 또 양복을 입는데, 단추를 잠그고 있으면 더 좋겠죠, 그런데 단추를 잠그면 거룩하고 잠그지 않으면 거룩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양복 단추를 잠그면 거룩하고 잠그지 않으면 거룩하지 않다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절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하게 하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주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함과 같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는 내가 나름대로 만든 율법적인 규칙들로서 사람들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지지 말고, 진정한 율법의 정신을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함과 같이 서로 사랑하면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인간적인 결심이 얼마나 약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맹세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약속이지만 나 자신에게는 결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결심도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올해는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 자신에게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한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내 목숨을 걸겠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손가락을 칼로 베어서 피를 냅니다. 그리고 혈서를 씁니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반드시 공부를 하겠다. 이것을 내 피로서 맹세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심이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 실제 이 이야기는 요즘에 일등 스타강사라고 하는 전한길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그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칼로 손을 베어서 혈서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너무 실망해서 모든 공부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려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1년 뒤에 아버지께서 그를 부르시면서 장롱에서 돈을 내놓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면서 내가 너를 위하여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준비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 왜 공부하지 않니 왜 대학에 가지 않니”라고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눈물을 흘리시면서 “너를 위해서 등록금을 준비했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다고 합니다.
여러분 과연 전한길씨가 혈서를 써는 결심과 맹세로 공부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의 눈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36. 네 머리로도(내 생명을 걸고) (맹세)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들의 맹세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심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래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눈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그래서 내 힘과 결심을 의지하지 마시고 오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눈물을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절대 내일 일을 장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맹세한다고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맹세한다는 것은 내가 앞으로 5년 뒤에는 반드시 이것을 하겠다, 또 10년 뒤에서는 반드시 이것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미래에 대해서 절대 장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장담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는 내일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내가 5년 뒤에 반드시 이렇게 하겠다 10년 뒤에 이렇게 하겠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일 일을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내일 일을 절대 장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 일을 절대 맹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 일을 내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등산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힘든 골짜기와 계곡을 넘을 수 있습니까? 너무 멀리 바라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냥 할 걸음씩 나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골짜기도 넘고 계곡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일에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장담하지 마시고, 오늘 하루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해서 걸어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미래를 복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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