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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5:13-16)

by 금빛돌 2024. 1. 31.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시지, 너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주신 말씀도 되지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말씀에서는 교회는 이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즉 교회는 이미 이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당시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엄청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스라엘나라에서 제일 가난한 지방인 갈릴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구성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대부분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리고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제자들이라 매일 예수님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꾸지람을 받던 자들입니다. 숫자적으로도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더 엄청난 말씀은 그 다음 말씀입니다.

14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산위에 있는 동네(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산위에 동네(도시)는 당시의 왕궁이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당시에 왕궁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감출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우리나라로 말하면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용산이요 국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합니까? 바로 그곳이 산 위에 있는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올라가면 온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래서 감출 수 없습니다. 또 그곳에 올라가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 촌 동네에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고, 산위에 있는 도시, 즉 왕궁에 사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고 보잘 것이 없어도---우리는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소금이 되었고, 빛이 되었고, 산위에 동네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소금인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에게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할만한 인간적인 그 무엇들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빛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하니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셨고, 세상의 빛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항상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위치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통해서는 하는 조그마한 행동의 날개 짓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청와대 대통령이 하는 한 마디 말과 행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제가 용산에 있는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이 세상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목사가 아니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 아니고 소금도 아니다. 더욱이 나는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존재다, 그러니 더 이상 나는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없고 소금이 될 수도 없고--산위에 동네는 꿈도 못 꿀 존재다라고 생각하기 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 모두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만일 나는 세상의 소금도 아니고 빛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소금이고 빛이 되었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비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 北京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 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말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에게는 거룩한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통해서 하는 조그마한 행동들이 이 세상에 태풍도 가져올 수도 있고. 훈풍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용산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함부로 싸우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는 모든 행동들이 언론에 노출이 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산 위의 동네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싸우고 싶어도 마음대로 싸우지 못합니다. 미워하고 마음대로 싶어도 미워하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산위에 동네로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여기서 보이지 않게 행하는 작은 사랑의 선한 행동들이 지금도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들 우리 동부제일교회 성도님들은 행동과 말들이 용산에 있는 대통령과 같이 말하시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이 복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고 산위에 동네로서 어떻게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까?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교회가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이 되어야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서구의 교회는 오래 동안 교회가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도 타락했고, 세상도 같이 타락했습니다. 또 오늘 날에도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때 대통령을 배출한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자신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이 빛이고 소금이고 산위에 동네라는 말은 우리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슴과 빛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은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인격적, 도덕적 영향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김승무간사님 청대학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인 것을 먼저 강조합니까? 아니면 세상의 소금인 것을 먼저 강조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빛이기 전에 먼저 소금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빛과 소금이 되자 라는 말은 하는데, 성경에서는 소금이 먼저고 그 다음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말씀을 다시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보다 소금인 것을 먼저 강조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간사님이 한 번 더 설교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소금과 빛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소금은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빛은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엡58절을 보시면 5:8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행동이 전에 먼저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인격이 바로 되지 않고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외식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팔 복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 즉 인격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 팔복은 예수님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 먼저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우리가 팔복의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기에 앞서서 팔복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소금과 같은 인격이 되어야 부패한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소금과 같은 인격이 되어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소금과 같은 인격이 되어야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면서도 왜 세상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 인격이 팔복이 인격,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소금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어떤 인격이 되라고 합니까?

먼저 심령이 가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우리의 연약에 대하여, 세상의 타락에 대해서 늘 애통하는 근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절제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또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잘 됨보다 옮음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며, 죄에 대해서 깨끗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의를 인하여 핍박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날마다 옳음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소금과 같이 예수님을 닮는 자가 될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소금이 되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어떻게 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 사람에서 제일 의롭다고 하는 자들보다 더 의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5: 20.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그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고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가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고 하던 사람들의 의보다 더 의로워야 빛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될 수 있습니까?

먼저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산상설교 전체의 문맥으로 보면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바리새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높은 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과 같은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죽인 것만 살인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조차 살인죄로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만 아니라 마음의 살인죄도 짓지 말아야 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육체적 간음만을 간음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간음조차도 원통히 회개해야 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원수에 대해서는 당연히 미워하고 보복합니다. 그것을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수를 보복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을 빌어주는 정도로 의로워야합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구제를 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또 기도를 할 때도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에게 보이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즉 이 세상에 먹고 사는 육신적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그의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나은 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말씀을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아무리 말로만 주여 주여 하고, 말로만 화평과 옳은 행실을 주장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나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말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씀대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수준과 삶을 살 때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세속화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격이 예수님을 닮는 인격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이 세상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 모두 이 산상설교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해야합니다. 우리가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정말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진정으로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으며,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갈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산상설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산상설교를 대하면서 우리 모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피 뭍은 십자가를 힘입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해야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 완전하게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데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둘째, 우리가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완전이 아니라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완전과 온전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완전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온전이란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절대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우리가 비록 완전하게 이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고 목표가 되어야합니다. 미래학자인 김윤식목사님은 한국사회가 초고령화와 인구감소, 그리고 경제침체의 원인으로 50프로가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사라질 교회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서 있는 교회는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든지 부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없다고 해서 이 말씀을 비웃거나 포기한다면 우리 교회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 말씀대로 완전하게는 살 수 없지만, 이 말씀의 기준을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바람이 불어도 절대로 없어지거나 흔들지 않는 교회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셋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적인 힘으로는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날마다 심령이 가난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성령의 충만과 은혜를 구하면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적으로는 이 말씀대로 살아갈수 없지만,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얼마든지 이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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