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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마5:9)

by 금빛돌 2024. 1. 1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화평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대로 사탄은 화평을 깨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화평을 원하신 분이시고, 화목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의 제사 가운데 화목제물이 있습니다. 모든 제물들은 불태워서 없애는데 화목제물은 붙태우지 않고 같이 먹도록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구약시대 화목제물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줄 아십니까?

하루나 이틀 만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셋째 날에 남이 있으면 반드시 불살라야 합니다.

7: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16.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17.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18.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그러면 왜 화목제물을 하루나 이틀 만에 다 먹어야합니까? 왜 그것을 셋째 날까지 남겨서 먹으면 그것을 먹는 자가 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화목제물의 제물 중에서 수소나 암소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하루나 이틀 만에 어떻게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하루나 이틀 만에 먹기 위해서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소 한 마리를 이웃과 하루 만에 나누어 먹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내가 친하고 좋아하는 한 사람에게만 그 모든 고기를 나누어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도 받은 제물을 하루 만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고기를 나누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먹을 만큼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나누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야합니다. 그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어야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에게 정을 느낍니까?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에게 정을 느낍니다. 예를들어 아버지는 돈을 벌어줍니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음식을 해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누구에게 정을 느끼겠습니까? 돈을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음식을 주는 어머니에게 정을 더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화목제물을 나누다 보면 서로 서먹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정을 나누어줍니다. 또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정을 나누어줍니다. 그렇게 화목제물로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서로 화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소 한 마리를 나누어주는데, 예를 들어서 20집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소고기 앞 다리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21번째 집을 가야하는데, 그 사람과는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만큼 했으니 이 한 다리쯤은 그대로 두면 되지 않겠는가? 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보내고 또 이틀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제 삼일 째 그 고기를 먹으면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왜 화목제물의 고기를 삼 일째 먹으면 죄가 되겠습니까? 고기를 남겨주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에게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 일 된 고기를 먹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그 고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화목하지 않은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화목제물을 드리라고 할 때 그 모든 제물들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수컷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화목제물은 암수가 다 됩니다. 또 소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을 각자의 형편에 맞게 드리면 됩니다. 집에 돈이 없으면 비둘기라고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모든 제물은 다 하나같이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구약시대 모든 제물들은 다 흠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하기 위해서 누구를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흠이 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엡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사이에 막한 담을 허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어떤 접착제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의 접착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화평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화평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313절과 14절에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해야 진정한 화평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서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용서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용서란 악을 용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1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용서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심판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여기서 보시면 원수 갚지 말라는 말씀은 원수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원수를 용서하면 그 잘못은 누가 심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하심, 즉 하나님의 심판하심에 맡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갚으리라고 합니다. 즉 내가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용서란 절대 악을 용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란 악에 대한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분쟁이 생기고 갈등이 생깁니까?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판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심판자가 되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심판을 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용서입니다. 용서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용서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용서란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서하면 내가 손해 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서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제일 먼저 누구를 위하여 우리를 용서하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43: 25.(하나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은 누구인줄 아십니까?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도 억울한데,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아서 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한다면 나를 위해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또 용서에 대한 세 번째 오해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용서하겠다고 합니다(18:18). 그런데 아무리 백날을 기도해도 내게 용서할 수 있는 하늘의 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하면 우리에게 하늘의 은혜를 베풀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8:18절에서 보면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땅에서 푼다는 말은 용서함으로 맺혔던 인관관계를 푼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용서함으로 맺혔던 인간관계를 풀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막혀있던 문도 우리에게 열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열린 하늘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용서함으로 이 땅의 모든 인간관계의 매듭들을 풀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4)용서에 대해서 네번째 오해는 용서를 믿음의 문제로 생각합니다(171-10).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루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 그렇게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큰 믿음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 같은 작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인과 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용서하기 위해서 더 큰 믿음을 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용서는 믿음이 커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으로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왜 주인과 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용서는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순종해야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종이 주인에게 하는 것은 오직 순종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란 믿음이 작다 하더라도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순종해야할 문제입니다. 또 종에게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이 명하는 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용서란 믿음의 문제도 아니고, 감정의 문제도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이와 같이 용서는 믿음이나 감정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정말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믿는다면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용서에 대해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순종하여 용서하면 용서의 감정은 따라서 옵니다. 용서는 믿음이나 감정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5)또 용서에 대한 다섯번째 오해는 우리의 인간적인 힘으로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절대 우리의 자연적인 성품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은 복수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영적인 새 생명이 있어야합니다. 용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인간적인 힘으로 용서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용서하려고 하면 할수록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악 된 본성을 인정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성령하나님의 힘으로, 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용서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에게 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용서 합니다라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용서함으로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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