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간음하지 말라(마5:27-32)

by 금빛돌 2024. 2. 21.

 

소요리 문답 72문에서 제 7계명이 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제 7계명이 금하는 것은 모든 깨끗하지 못한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고 답을 합니다(5:28).

그리고 소요리 문답 해설집에서는 간음의 종류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육체적 간음이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5장에서 고린도 교회의 청년 가운데 아비의 아내를 범하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비의 아내는 아버지의 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고전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고전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 합니다.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는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음행의 죄에 대해서는 통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 조차도 음행의 죄에 대해서 통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통한히 여기다는 말은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간음 죄를 지은 자에 대하여 그 사람이 마치 영적으로 죽은 자인 것처럼 하고 애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를 쫓아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심지어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서 창기와 간음하는 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간음하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간음에는 먼저 육체인 간음이 있습니다.

또 소요리문답 해설집에서는 마음의 간음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39번에서는 정욕적인 사상과 생각, 음탕한 노래와 서적, 토색적인 그림이나 영화를 즐기는 것도 7 계명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또 소요리 문답 해설집에는 신앙적인 간음이 있다고 합니다(3:8, 16:23).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인 간음에는 먼저 마음의 간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간음한 자는 반드시 육체적인 간음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간음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영적인 간음이 있으면, 우리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이 들어옵니다. 또 음란한 생각이 들어오면 육체적인 간음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체적인 간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가 자신을 살피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음란의 죄는 영혼을 망칩니다. 또 육체를 망칩니다. 또 모든 관계를 망칩니다. 또 우리 가운데서 성령이 자유롭게 역사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육체의 정욕과 더불어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령 안에서 참된 평안과 자유와 행복과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먼저 육체의 정욕과 더불어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1)육체의 정욕은 무조건 피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성령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격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자신 안에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안에 성령이 이기나 음욕이 이기나 시험하기 위해서 그 날 단 하루 음란사이트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음란의 영에 시험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은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보지 말아야 합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이동원목사님은 주일 저녁에 쉬기 위해서 유선티브이를 보는데, 음란한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선방송을 당장 끊고 그냥 안테나를 달고 공중파만 보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딤후222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고 합니다.

벧후14절에 보면 너희가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만일 음란의 죄를 피하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눈에 너로 음란의 죄를 짓게 하면 눈을 빼어 내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컴퓨터를 클릭해서 음란한 영상을 보았다면 손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지체 중에서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음란의 죄를 이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존스타트 목사님은 우리가 문화적 불구자가 되어서라도 음란의 죄를 짖지 말라는 말씀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인터넷이 우리로 음란의 죄를 짓게 하면 인터넷을 끊어야 합니다. 만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음란의 죄를 짓게 된다면 영화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드라마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문화에 뒤처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존 스타트는 문화의 불구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의 불구자가 되어서라도 음란의 죄는 짓지 말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음란 영화나 드라마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구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드라마에서는 음란한 장면들이 쉽게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빨리 다른 체널로 돌려야 합니다. 아니면 빨리 가기를 해서 건너뛰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우리는 눈을 수십 번 뽑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항상 방심하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음란의 죄는 짓지 않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언제든지 음란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란의 죄에 대하여는 무조건 피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음란에 대해서 피해야할 것 중에 하나는 음란의 말입니다(찾아보겠습니다).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음란한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음란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음행의 말에 참예하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모임을 하더라도 절대 음란한 말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특별히 편안한 모임에서 농담으로 하는 말 가운데서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가 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음란에 대해서 피해야 할 것은 음란을 유발케 하는 그 어떤 행동이나 모습도 피해야합니다. 어떤 여성 사역자의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남성들이 음란의 죄를 짖는 것만 책망하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남자를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들도 책망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들도 교회를 올 때 옷차림도 조심해야 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고 해서 세 분의 박사님이 계십니다. 그 중에 오병세 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여자 반주자가 속이 비치는 옷을 입고 반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 오박사님에게 개인적으로 조용하게 그런 옷을 입고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2)또 오늘 본문에 보면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그러니까 음란은 마음의 단계에서부터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사실 음란의 죄는 마음의 단계에서 싹을 자르지 않고, 조금이라도 행동으로 옮겨지면 그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단계에서 싹을 잘라야 합니다.

(다윗의 범죄과정연구-평안할 때/밤에 옥상에 거님//마음에 둠/알아봄/계획/범죄/감추기위해더큰 범죄).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전에 박영돈교수님의 말이 기억이 납니다.

날라가는 새를 잡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새가 날라가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우리 마음에 음란한 생각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때 그 음란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행햡니다. 그래서 음라한 새는 날라 다닙니다. 그 날라 다니는 음란한 새를 절대 마음을

잡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의 경우에 정말 그 마음이 음란한 마음이 있을 때 그 옥상에서 다윗이 눈물로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음란한 마음에 대해서 호들갑을 떠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마음으로 음란한 마음이 들 때 호들갑을 떨어서라도 떨처내시기 바랍니다.

성프란시스도 그 마음속에 음란한 마음들었을 때 밤새워서 하나님 앞에서 울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3)그런데 우리가 음란의 죄를 피하고, 또 나 자신 스스로 내 안에서 빨리 처리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또 딤후222절 보면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우리에게 거룩하고 깨끗한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건전하게 교제하는 자리에게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결혼한 부부라면 사탄이 조금도 틈 타지 못하도록 부부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목사 안수 받을 때 당시 음란의 문제가 노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음란의 죄를 이길 수 있는가를 목사님들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부부관계라는 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부가 서로 잘 교통하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4)무엇보다 우리가 이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어떻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습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죄를 지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지금 요셉은 누구 앞에 있습니까? 주인의 부인 앞에 있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드리는 자리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사소한 삶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요 라고 합니다. .

그러니까 우리가 늘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않은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도 그 곳이 하나님 앞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임영수 목사님은 인간의 성욕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이 변질되어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의 만족대로 정욕을 채운다 해도 인간은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신 주님과 연애할 때-그와 함께 기쁨의 교제를 나눌 때, 이 세상의 그 어떤 정욕의 죄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