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에서의 족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두 아들 중에서 야곱만 사랑하여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에 보면 “롬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창 37장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야곱의 족보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36장의 하나님의 택하지 않는 백성과 창37장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에서의 족보에 나오는 하나님의 택하지 않는 백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2절을 보시면 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것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에게 너는 반드시 하나님을 믿는 아내를 맞이하라고 외삼촌의 집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옆에서 에서가 듣고도 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래서 에서도 다섯 아들을 낳습니다(4,5). 그리고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자기라는 말이 모두 여섯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에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입니다. 아내도 자기의 것이고, 자녀도 자기의 것이고, 집도 자기의 것이고, 가축도 모두 자기의 것입니다.
또 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여기서 보시면 야곱만 아니라 에서도 소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소유가 많아서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 땅을 벗어나서 세일 산에 거주합니다. 왜 이렇게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물질을 더 우선하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이 세상에서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을 떠난 삶입니다. 아내를 선택할 때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내들을 선택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모두 자기중심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에 더 많은 소유를 얻으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36장 15-19절을 보면 에서의 자손 가운데서 족장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족장이란 그 지역의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자손들 가운데 이 세상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족장들도 나왔습니다.
또 창36:24절을 보시면 에서의 자손들이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자손은 지금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슬람사람들이 땅을 파면 석유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창36장 32절을 보시면 “창36:31.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왕이 나오는 것은 사무엘서에서 사울 왕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나오기 전에 에서의 자손들 가운데서 왕들이 나옵니다.
이렇게 에서의 자손들은 하나님이 없이도 이 땅에서 많은 자녀를 낳고, 또 또 물질도 풍부하고, 또 사회적으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 36장에 나오는 에서의 족보가운데서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창36: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여기서 보시면 에서의 자손 가운데서 아말렉이 나옵니다. 또 16절에 보시면 아말렉이 족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아말렉이 어떤 족속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도 손을 내리는 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하고 여호수아가 싸워서 이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자손가운데서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에스더서에 이스라엘 백성을 전멸시키려고 했던 하만도 아말렉족속입니다.
이와 같이 에서의 자손 가운데서 아멜렉 족속은 대대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또 에서의 자손 가운데 신약시대를 오면 예수님이 탄생하려 했을 때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닌 에서의 족보에 나오는 에서의 자손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서로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여인과 결혼했지만 아무 어려움이 없이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아들을 낳은데 25년이 걸렸습니다. 또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20년이 걸렸습니다.
또 에서의 자손들은 계속해서 육신적으로도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서 족장도 나오고 왕도 나오고 온천도 발견합니다.
그런데 창 37장 이후에 나오는 야곱의 자손들은 어떻습니까?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살이를 합니다. 또 기근이 들어서 온 가족들이 다 애굽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400년 동안을 종살이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400년을 종살이를 하는데 에서의 자손들은 이 땅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면 모든 민족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도 복을 받고 너희 자손들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이 땅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무조건 잘 삽니까? 또 택하지 않은 백성은 어렵게 삽니까?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 어려움이 없이 잘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어렵고 힘들게 삽니다.
이에 대해서 시편 73편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시편 73: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의인들에게 선을 행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이 형통하고 잘 됩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합니다(시73:4). 또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습니다(5). 그래서 한 없이 교만합니다(시73:6). 그런데도 그들의 소득한 마음의 소원보다 더 많습니다(7). 그래서 시편73:12절을 보면 “시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고 착하게 살아보려는 나는 어떻습니까?
“시73: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살아갑니다.
이것이 창 36장에 나오는 에서의 족보와 창 37장에 나오는 야곱의 족보에도 나옵니다.
또 이것은 지금 우리도 느끼고 있는 불의한 현실입니다.
또 시편 기자가 느끼고 있는 불의한 현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 잘 되고 의인이 고난받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두 가지 마음입니다.
한 가지는 먼저 불평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을 이 불평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의분입니다. “하나님 왜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악인을 멸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더 큰 복을 주셔야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의분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낙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고난 받는 상황가운데서 굳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서 1장에 보면 불의한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합1:4).
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시37:1. 행악 자를 인하여 불평(의분)도 하지 말고,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 말찌어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면 우리가 악인에 대해서 불평도 하지 말고 낙심도 하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시37: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또 시73편에는 악인의 형통함이 마치 높은 미끄럼틀위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미끄럼틀위에 있으니까 높아 보이고 모두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그 높은 미끄럼틀은 멸망을 가는 미끄럼틀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1)그러면 악한 사람들이 잘 되고, 또 의인이 괴로움을 당하는 불의한 현실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1.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에게 “합2:3. -(악인의)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의인은 고난이 있지만 반드시 잘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실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아래 시편37:24-25절“시37:24. 그는(의인)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37편 28절을 보시면 시37: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의인)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의인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그래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매일 먹는 양식으로 여기시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우리는 불의한 현실가운데서 불평하지 말고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37: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박국1장을 보면 하나님 왜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서 2장에는 악인의 종말이 반드시 온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재 하박국은 어떻게 말합니까?
합2:4 보라 (현실가운데서 악인의)마음은 (항상)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비록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현실에서 모든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아서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비록 그렇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망시키실 것을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나니까 하박국이 어떻게 말합니까?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낙심이 되시고 우울하십니까? 특히 요즘에는 코로나 불루가 아니라 코로나 블랙이라고 합니다. 코로나불루는 코로나로 인해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블랙은 자포자기입니다. 더 이상 우울하지도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전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내 현실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어두움의 현실이라 하더라도 여러분 그래도 여호와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를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절대 감정이 아닙니다. 비록 내 감정을 도무지 하나님으로 기뻐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러분 여호와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8장 10절에서 “느8:10.-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기뻐하라고 합니다. 네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면 기뻐하라고 합니다. 또 네 삶이 행복해지면 기뻐하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면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까?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여호와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 않아도 여호와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제목을 들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삶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삶이 행복하지 않아도 여호와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래도 여호와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또 우리는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5-6절입니다. “시37: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도다”.
우리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여기서 맡긴다는 말은 “옮겨 놓는다. 내려놓는다”는 말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을 올라가면 갈수록 숨이 차고 그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러면 가볍게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내 모든 삶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원망스럽고 불평스러운 일들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심지어 사람에 대한 판단조차도 다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가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자녀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에게 억울하고 답답한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 모든 문제들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한 밤중에 길을 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나무에 걸려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손을 놓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밤새도록 불안하여 떨면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미명에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을 내려놓으세요, 손을 내려놓으세요”. 그래도 불안해서 손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빛이 더 밝아졌는데, 보니까 자기 발 바로 밑에 땅이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손을 내려놓으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불안해서 손을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너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아라, 내게 굴려버려라. 네가 잡고 있는 그 손을 내려놓으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저가 이루시고, 또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내려놓으면-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정오의 환한 빛같이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불의한 현실을 가운데서도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시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결국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이 불의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을 믿는 선한 삶이 이 땅에서도 승리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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