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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48)요셉의 꿈에 대한 세 가지 오해(창37:1-11)

by 금빛돌 2022. 7. 29.

2002년도에 우리나라에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물론 그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온 국민들이 그 꿈 때문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이 꿈을 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 6절과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고 합니다. 또 요셉이 두 번째 꿈을 꿉니다. 9절입니다.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19절에 보면 형들은 요셉에 대해서 37: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이라고 하면 먼저 요셉의 꿈이 먼저 떠오릅니다. 또 요셉의 형제들도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셉의 꿈이라고 했을 때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셉의 꿈에 대한 첫 번 째 오해는 요셉의 꿈이 요셉이 꾼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매일 자신이 형들보다 더 높이 되어서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고, 또 심지어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에게 절을 할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꿈이 꿈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꿈은 인간이 꾸는 꿈이 아닙니다. 또 인간이 꾸고자 해서 꾸는 꿈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꿈은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은 절대 요셉의 꿈이 아닙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에게 대한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여기서 보시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아무 생각이 없이 계시지 않고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동물과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동물은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또 왜 내가 여기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왜 태어나셨습니까?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나는 절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아무 의미 없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해서 이 자리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지금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루어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또 요셉의 꿈에 대한 오해가 무엇입니까?

2. 요셉에 꿈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요셉의 꿈은 무조건 세상에서 높이 되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당시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모든 형제들보다 더 뛰어나게 되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요셉의 꿈에 대한 형제들의 오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고 합니다.

한때 기독교계에서 고지론(高地論)과 미답지론(未踏地論)이 서로 논쟁이 된 적이 있습니다. 고지론이란 전투를 할 때 먼저 고지를 점령해야 전투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 즉 고지에 올라가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고지론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지론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들 중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신앙생활의 목표가 그런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높은 자리를 바라보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평생을 패배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아니면 죽을 때까지 그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허황된 꿈만 꾸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독교인 대통령시절에 우리나라가 기독교국가가 되었어야하지 않습니까? 또 국회의원 중에서 3분의 일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정치가 기독교적으로 다 바뀌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실을 보았을 때,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점령해야 세상에 기독교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무리가 있습니다. 또 이런 높은 자리만을 강조할 때 사람들은 낮은 곳 섬기는 곳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미답지론(未踏地論)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단순히 높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밟지 않은 곳(未踏地)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실 고지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도 이런 고지론의 입장에서 볼 때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요셉의 꿈입니다.

그러면 과연 요셉의 꿈이 무엇입니까?

고지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셉의 꿈은 애굽의 2인자인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애굽의 총리가 되는 꿈을 꾸면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면밀하게 요셉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과연 그 꿈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꿈을 꿀 때 내가 앞으로 13년 뒤에는 애굽의 총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꿈이란 그 꿈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요셉은 몰랐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직전까지도 애굽의 총리가 되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직전까지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은 요셉이 단순히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즉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평생 꿈꾸었던 것은 애굽의 총리가 아니라--어떤 위치가 있건-내 삶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만일 요셉이 단순히 애굽의 총리가 되는 꿈만을 가지고 있었다면--그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찬스가 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청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 총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그 청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인정을 받고, 나중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시위대장 보디발에게도 인정을 받아, 정계에 들어가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될 기회를 엿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관심을 가진 것은 애굽의 총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보디발 아내 앞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죄를 지으리요 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사람 앞에 서 있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세상적인 성공이나 높은 자리가 아닙니다. 쾌락이나 재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억울하게 감옥에 가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사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억울하게 감옥에 간 요셉이 실패한 인생이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지 않았어도--죄수의 신분이었어도-그는 성공한 삶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굴하게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죄수로 사는 삶이 낫기 때문입니다

--또 요셉의 꿈이 단순히 애굽의 총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감옥에서 요셉의 삶입니다. 만일 요셉의 꿈이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면 그는 총리가 아닌 죄수가 되었을 때, 실패와 좌절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이럴 수 있습니까? 왜 내가 죄수가 되어야합니까? 내가 가야할 곳은 저 높은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죄수들이 있는 감옥에 있어야합니까? 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감옥에 있건 어디에 있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것으로 요셉은 충분했습니다.

--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꿈이었다면 그 감옥 속에서는 대충 아무렇게나하고 자포하기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애굽의 총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과연 그 곳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옥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총리가 되지 못할 상실감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감옥 속이라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니 감옥 속에서의 죄수의 삶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났고, 그의 꿈을 풀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요즘 경제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직장에. 또는 그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청년들에게 이런 고지만을 강요합니다. 적어도 이런 직장에이런 학교에 -이런 고지에 올라가야 성공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적어도 나는 이런 자리에는 올라가야하는데--이런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데--이정도의 위치는 되어야하는데, 지금 내가 그것에 못 올라가니 나는 실패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고지를 점령하는 소수를 위해 다수가 패배주의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위치에 있건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어떤 고지에 올라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그곳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입니까? 또 내 삶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그것이 성공한 삶이고, 의미있는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요셉의 꿈은 애굽의 총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다음입니다

--45:7,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애굽의 총리)로 삼으셨나이다

여기서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흉년이 들것을 미리 아시고--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죽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그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도 --단순히 총리자체가 아니라-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그래서 요셉은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혹 지금 내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금 내 인생이 바닥을 살더라도 꿈을 꾸어야합니다. 이것은 높은 곳을 향한 꿈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위한 꿈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가는 꿈입니다. 그래서 손경민씨의 행복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나는 아직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야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이 있습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향하신 꿈이 있습니다.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인생의 밑바닥에 있더라도 여러분들을 향하신 그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요셉의 꿈에 대한 오해는 우리를 향하신 꿈이란 좋은 환경과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나는 지금 먹고 살기도 힘이 드는데 무슨 꿈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지금 우리가 꿈을 꿀 상황이냐, 현실이 이렇게 캄캄한데 무슨 꿈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언제 꿈을 꿉니까? 요셉이 꿈을 꿀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에게 평안하냐 라는 인사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요셉은 청소년 시절에 완전히 왕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언제 꿈을 보여주셨습니까? 요셉이 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더 이상 인간적인 꿈을 꿀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십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최악의 상황입니다. 도무지 내가 그 어떤 인간적인 꿈도 꾸지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상황이 최악입니까? 도무지 인간적으로 꿈을 꿀 수 없는 상황입니까?

그때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는 꿈은 평안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겨야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꿈을 이루어가십니다. 만일 꿈이 평안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면 요셉이 꿈을 꾼 이후에 그 어떤 고난도 없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은 꿈 이야기를 하다가 더욱더 형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이것은 분명 고난입니다. 그런데 만일 요셉에게 이런 고난이 없었으면 요셉은 애굽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또 요셉은 애굽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이것도 분명 고난입니다. 그런데 만일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술 맡은 관원을 만날 수 없었고 그렇다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고, 이스라엘을 위기가운데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서 고난으로 인도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7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7:20. ,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덩이와 같은 곳에 던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를 시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은 그 어떤 어려움과 시험과 고난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꿈은 우리의 꿈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느 한 순간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엡123절입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가 이 땅에 축복의 통로가 되어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어떤 원로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교회를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가장 어두울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때가 하나님의 꿈을 꿀 때입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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