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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이사야

여호와를 아는 지식(3)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남(사9:6, 욥42:5)

by 금빛돌 2020. 11. 20.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아는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사야 5장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사야 6장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이사야는 무엇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하늘 위에 계신 전적인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 내가 제일 경건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보다 더 큰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이 세상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날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사야가 언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어떤 왕입니까? 웃시야 왕은 정치적으로 아주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마음이 교만해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다가 문둥병이 걸려서 나중에 비참하게 살다가 죽은 왕입니다.

/이사야는 그 웃시야 왕에게 많이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웃시야가 죽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은 언제 자신을 만나게 해 주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우리에게 큰 실망을 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사람은 정말 믿을 수 없다고 할 때입니다.

저도 20대 때 제가 정말 기대를 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분을 하나님만큼이나 믿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 상처를 가지고 제일 많이 불렀던 찬송이 432장 큰 풍랑이 설레는 어둔 바다

(1)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사공은 주님이라

(2)큰 풍랑이 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 입 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사공은 주님이라

(3)큰 소리로 물결을 명하시면 이 바다는 고요히 잠자리라 저 동녘이 환하게 밝아올 때

나 주 함께 이 바다 건너가리

[후렴] 나 두렴없네 두렴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여기서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할 때 저 등대의 불빛은 내가 믿고 기대했던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소경 바디메오가 언제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만납니까? 그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큰 실망을 줄 때입니다. 심지어 육신의 아버지조차도 그를 모른다고 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를 쫓아 낼 때입니다.

9: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을 소경 바디메오를 언제 만나주십니까? 사람들에게 쫓겨날 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사람들 때문에 실망을 하십니까?

특별히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습니까?

그때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날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욥기를 보면 욥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욥이 어떻게 고백합니까?

42:5 내가 (고난받기 전에는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고난 받고 난 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고난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만 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 받은 후에는 그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욥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은 그의 죄 때문에 고난당한 것이 아닙니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욥의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계속해서 욥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이때에 욥이 그래 내가 죄를 지었다. 그래서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더 이상 친구들과 논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욥이 더 겸손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재심전문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가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십 년씩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가 하면 이유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계속해서 죄를 추궁하니까 그냥 귀찮으니까 그래 내가 그 죄를 지었다고 진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진술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이 없는데도 귀찮으니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이와 같이 욥은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받는 이유를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38장에 하나님은 폭풍가운데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 바다를 만들 때 너는 가보았느냐 너는 내가 만든 바다 밑을 본적이 있느냐 이런 질문을 무려 71개나 하십니다. 그러시고 욥의 고난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해주시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하경이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말씀이라도 해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런 한 말씀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죄를 지었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저는 7년 동안 매일 성경만 가르쳤습니다. 내가 지은 죄는 성경만을 가르친 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그 이유를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더니 이제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그 이유는 욥으로 하여금 귀로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이 어떤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고난가운데 삶의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데려가십니까? 왜 나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그 고난을 통해서 귀로 만들었던 하나님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저도 처음하경이가 아플 때 서문로교회 도서실에서 아침11시까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다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갑자기 내 눈에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다. 너를 위해서 피를 흘렸다 그렇게 함으로 너의 죄를 구원했다 이만하면 다 됐지 않느냐 이것이 너를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냐 이것이 내가 너와 함께하는 증거가 아니냐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주님 이 아이를 낫게 해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주님은 나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고난들을 허락하십니까?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박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동부제일교회 권사님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신앙이 성숙 되었는가?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 때문입니다. 고난 때문에 그분들은 다 하나님을 만나 보신 분들입니다 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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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3.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합소서.

4.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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