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산 즉 예루살렘 성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이 말씀은 신약시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가운데 거룩한 산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 이상 원수가 없습니다. 또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서로 상처를 주는 일도 없고 상처를 받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원수도 없고, 상처 주는 일도 없고 받는 일도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이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어떻게 원수고 없고, 상처도 주지도 않고 상처를 받지도 않은 거룩한 교회,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그 비결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신약의 교회에서 완전히 이루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신약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로핑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그것은 죄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아니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용서받은 잘못이 있기에 한없는 용서가 자라나는 그런 교회를 말합니다. 갈라진 틈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온갖 골짜기를 뛰어 넘으며 화해의 길을 찾는 그런 교회를 말합니다. 분쟁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분쟁이 여느 사회와는 달리 해결되어지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 끝으로 십자가와 고난이라고는 또다시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죽되, 또한 그분과 함께 일으켜 지기에 매일 매일 부활절을 경축하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왜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바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호4장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여러분 호세아 시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호세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북 왕국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없었습니까? 그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지 못하였습니까? 그들이 제사 즉 예배에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은 누구보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또 제사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이 없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까? 여호와를 아는 바른 지식이 없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래서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6. 나는 인애(사랑)를 원하고 제사(예배)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예배)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제사를 드리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가 무엇입니까? 나의 모든 것은 주님께 불태워드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먼저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지금 호세아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힘써 알라 고 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무슨 소리냐 나는 누구보다 여호와를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여호와를 알라고 하느냐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을 정확하게 필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았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계십니까?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은 “속으로 무슨 소리냐 내가 왜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이냐 나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한 예수님을 보내주신 그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계시다면 원수도 사랑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계시다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살고 계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쉽게 나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알기를 힘을 써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르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호세아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었는데, 왜 호세아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알고 섬겼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남쪽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거짓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 금송아지 우상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왕상12:25-30).
그래서 여러분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들어서 섬기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내 욕망을 이루기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을 금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하나님은 단순히 그들에게 황금을 주는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왜 그들이 하나님을 송아지로 만들었는가 하면 하나님을 송아지처럼 무조건 나에게 희생만 해 주는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의 복도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단순하게 우리에게 물질의 복만 주시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우리를 위해서 희생만 해주시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결국 누가 주인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나를 위해서 죽기까지 희생 만하시는 분이시는 말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섬긴다는 것은 결국 누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하지만 결국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큰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호세아 선지자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내가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만든 하나님 속에 나를 넣어두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로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 우리도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서 섬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어떤 기준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섬겨야한다 고 주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이것은 누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금송이지 우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처럼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십자가입니다. 나의 자아라는 금송아지우상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갈2장20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까?
나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합니다.
내 자아라는 내가 만든 금송아지 우상이 없어져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하나님이 없어져야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자아가 죽은 자만이 완전히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자가 원수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기도회시간에 내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위해서 혹시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안에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자아가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임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죽음으로 하나님을 더 온전히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르게 앎으로 더 이상 상처를 주는 일도 없고, 상처를 받는 일도 없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앎으로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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