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이 오늘 이 세상이 추구해야할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과 비슷한 이사야 2장 4절에서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오늘 이 세상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해서 “우리나라도 모든 무기를 없애야한다. 북한이 쳐 들어와도 우리는 절대 무기를 들어서는 되지 않는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또 현재에 표범을 어린 염소와 함께 눕게 하고, 또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로, 사자를 소처럼 풀을 먹게 하고, 어린 아이가 독수의 구멍에서 장난해서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북한이 쳐 들어오면 우리는 무기를 들고 싸워야합니다. 지금 북한에서 핵을 가지고 또 미사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 이상의 무기를 반드시 갖추어야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도 않는데, 우리나라가 무장해제를 하는 것은 절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절대 지금의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세상이 완전히 심판을 받아서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와서 이 땅에 완전한 그리스도의 나라가 와야지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완전히 재림 이후 미래에만 이루어지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 이후에 하나님을 믿는 택하신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운데서 도무지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운데서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며,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사는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여기서 보시면 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서 누구에게 끌린다고 하고 있습니까? 어린 아기에게 이끌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짐승들이 어린 아기에게 이끌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어떨 때 이 모든 짐승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어린 아기에게 이끌리겠습니까? 이 모든 짐승들이 모두 새끼 때입니다. 사자도 새끼 때는 어린 양과 같이 놉니다. 이리도 새끼 때는 어린 양과 같이 놀 수 있습니다. 또 짐승들이 새끼 때는 어른들은 겁을 내지만 어린 아이들은 겁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재림 때로 보면 재림 때 어떻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재림 때는 짐승들이 모두 새끼 때와 같이 성격들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짐승들이 모두 새끼 때와 같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이 신약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진다고 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모두 어린 아이와 같이 되면 우리가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싸우기도 잘합니다. 그런데 금방 싸우다가도 화해합니다.
어떤 대기업 회장 집의 가정교육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면 반드시 함께 손을 잡게 하고 벌을 세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씩씩거리면서 손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면서 서로 장난치고 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은 돈이 많은 대기업의 가정이지만 보통 보는 대기업의 가정과 같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어린이와 같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오직 성령으로만 충만할 때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령은 종말의 선취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성령하나님은 종말에 장차 올 하나님나라를 현재에 미리 맛보게 하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는 병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에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치유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는 모두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어린아이와 같이 이 땅에서 원수가 된 사람들도 모두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역사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어린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우리는 원수 된 사람들끼리도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스테반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스테반도 성령이 충만할 때 그에게 돌을 치는 자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이것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닙니다. 현재 지금 우리 안에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우리가 성령을 쫓아서 살지 않고 육신을 쫓아서 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의 근심을 듣습니다. “네가 그렇게 살아서 되겠나. 너는 왜 아직 네 육신이 죽지 않았어, 왜 아직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았어”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또 다시 회개하여 성령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원수도 친구로 변하는 역사가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떻게 오늘 말씀처럼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비결이 9절에 있습니다.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기서 내 거룩한 산은 시온 산인데, 시온 산에 예루살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내 거룩한 산이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21장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모두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재림으로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저 영원한 세상에는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서 내 거룩한 산이란 신약시대로 말하면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세우진 교회에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이 말은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고, 또 자기 자신이 상처를 받는 일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는 곳입니다. 사자와 양처럼 누가 누구를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단순히 크다고 해서 행복하겠습니까? 교회가 단순히 재정이 넉넉하다고 해서 행복하겠습니까? 교회는 세상과 다름이 행복입니다.
어떻게 달라야합니까? 정말 이 교회 가운데서 제발 서로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야합니다. 또 상처를 받는 일이 없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9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즉 교회)에서 해 됨(상처 주는 것)도 없고 상함(상처 받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교회)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서로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교회가 충만할 때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단순히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아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상처를 주지도 않습니다.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때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습니까? 이것을 알기 전에 먼저 왜 우리가 상처를 주는가? 또 왜 우리가 상처를 받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상처를 주는 이유는 그 사람에 무언가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했는데 그 사람이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당신이 왜 이것을 못하느냐고 하면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는 이유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고 기대를 했는데, 그 사람이 내게 실망을 줍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가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모든 만족을 다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앎으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내게 잘해주지 않아도 내가 절대 상처 받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람에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배가 부르면 사람들이 부족해도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만족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대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정으로 말하면 언제 부부관계가 제일 좋은 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서 하나님한분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입니다.
그러면 상대가 내게 어떻게 해도 나는 절대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또 상대가 아무리 부족해도 나는 절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또 오늘 이 말씀에서 “9하--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하는데 여기서 “이는” 은 서로 상처를 주지도 않는 이유만을 설명하지 6절과 7절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는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초원에 가면 실재로 사자가 어린 양과 같이 누워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사자가 배부를 때입니다. 사자가 배가 부르면 어린 양이 옆에 있어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림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사자도 풀을 먹습니다. 곰도 풀만 먹습니다. 그리고 모두 다 배가 부릅니다. 그러니까 서로 잡아먹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때입니다. 하나님으로 배가 부를 때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해롭게 했어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면 더 이상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모든 상처를 위한 진통제가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을 묵상할 때 모든 슬픔이 소멸됩니다. 성령하나님의 감동하심 속에서 있을 때 모든 쓰라림이 멎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슬픔을 잊으려 합니까? 여러분의 다른 근심을 헐어버리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바다에 빠뜨리십시오, 그의 무한하심 속에 빠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휴식의 침상에서 원기를 되찾고 다시 힘이 넘쳐나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제에 관한 경건한 묵상만큼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성령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진정으로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삼위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 더 이상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교회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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