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서로 진정으로 원수끼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서로 상처도 주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저 영원한 천국에 가서야만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신약의 교회를 통해서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이런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9절에서 “이는” 앞에서 말씀하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즉 우리가 이런 천국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란 창세기에 홍수가 일어나서 모든 세상에 물이 덮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창7장20절에 “창7: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고 합니다. 여기서 물이 불이 산들이 잠긴지라 하는데, 여기서 “잠기다”는 말이 “덮음 같이”와 같은 말입니다.
노아홍수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모든 세상에 물이 완전히 잠겼습니다. 그래서 물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럽게 싸우고 있습니까? 왜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까? 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왜 교회를 통해서도 이런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도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알아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알아야할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야한다고 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고 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어서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만든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제사보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우리가 알아야할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주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데, 언론을 통해서 보면 정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밖에 태양이 너무나 아름답게 비치고 있습니다. 그 태양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그 태양의 빛을 모두 완전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각자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은 안경을 쓰고 있으면 그 태양 빛이 검게 보입니다.
또 빨간 안경을 쓰고 있으면 그 태양 빛이 빨갛게 보입니다.
또 파란 안경을 쓰고 있으면 그 태양 빛이 파랗게 보입니다.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태양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은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태양 빛이 검다고 합니다.
빨간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태양 빛이 붉다 고 합니다.
파란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태양 빛이 푸르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적인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만든 율법주의적인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이렇게 말합니다.
“마12: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12: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고발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율법주의적인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리새인들이 율법주의적인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것은 결국 누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까? 바리새인들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는데, 바로 그 금송아지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죄로 말미암아 각자가 만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만든 하나님은 바로 인간 그 자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고 알 수 있다고 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을 더 온전히 알아 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라고 했을 때 아는 지식으로 번역된 “떼아”는 “야다”에서 유래된 명사입니다. 성경에서 “알다”는 뜻을 가진 “야다”는 부부가 성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부부가 함께 생활하면서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남녀가 있습니다. 서로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이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10년 동안 그 책을 밤낮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공부했습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인격적으로 만남을 통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격적으로 만나야합니다. 만남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보셨습니까?
교회를 수십년 다니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매일 듣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이사야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사야가 5장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 이사야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남으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사6장 5절에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이사야는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자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1)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이사야 6장까지 이사야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를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사6장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고 나니까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또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된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자의 모습입니다.
//2)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는 절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치 내가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철저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서 남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그들보다 더 큰 죄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비판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를 더 철저히 회개합니다.
그래서 누구의 죄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매일 십자가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고 3때까지 제가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저도 율법주의적인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음 속으로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3때 어느날 학교를 가다가 대구 서현교회당을 가게 되었습니다. 1층 예배실 뒤에서 저는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느냐 하면 제가 정말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까지 내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제는 제가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주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정말 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 가운데 두 글자를 새겨주셨습니다. 그것은 평안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이후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때 제 마음에 새겨주셨던 평안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대학3학년 때 1년 동안을 기도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저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라는 한 찬송만을 불렀습니다.
그때 저는 희락의 하나님, 기쁨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교회를 무수히 다녔지만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난 하나님은 희락의 하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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