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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강해⑳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후13:3-10)

by 금빛돌 2015. 9. 12.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세 번째 방문할 계획을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복음을 전하러 갔고, 두 번째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고린도전서를 쓰고 난 다음에 눈물로 호소하러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경으로 기록되지 않은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다시 가려고 했지만 바울은 그 계획을 취소하고 눈물로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교인들이 회개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세 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세 번째 방문하려고 할 때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인들이 회개를 했다고 하는데, 아직 그들 가운데 분열의 죄와 음란의 죄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2절에 보시면 두 번째 방문하였을 때 그런 죄를 지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경고를 하였는데, 이제 세 번째 방문을 하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때는 회개하지 않는 죄에 대여여는 사도로서 분명하게 권징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 번째 가려고 할 때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바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사도인 증거를 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전체에서 자신이 참 사도인 증거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사도바울이 거짓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종이로 만든 추천장이 없기에 사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3장에서 너희가 내가 사도인 것을 나타내는 편지이며, 추천장이고 말했습니다.

또 고린도교인들은 사도바울이 육신적으로 너무 많은 고난을 받고 있기에 참 사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난가운데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영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이 참사도인 증거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8부터 “8. 우리가 (육신적으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과 같은 고난을 항상 당함)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바울은 마지막으로 이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고후13:3. 이는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 사도인 증거로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사도인 증거를 고린도교인들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사도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4절 후반 절에 있습니다.

--“4- 우리도 그 안에서 (육신적로는)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일으키신 부활의 능력)으로 그(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

즉 사도바울이 참 사도인 증거는 육신적으로는 약하지만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고난과 육신의 약함이 있어도 영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 그가 사도인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인 증거를 말하고 난 다음에 이제 고린도교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합니다.

그 동안 바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사도인가 아닌가를 끝까지 시험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또 사도바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라면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증거를 요구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고린도교인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바울은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이제 더 이상 내가 참 사도인가를 시험하지 말고, 너희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증거를 보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5절에 “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라(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당신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 맞습니까? 당신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라고 하면서 증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하지 말고 너희 자신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를 시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증거를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참으로 여러분들은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믿음이 있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있다면 그 증거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그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5--(믿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는 증거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어떤 고난가운데서 낙심하지 않는 삶입니다. 또 그 어떤 고난가운데서 영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믿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려고 했을 때 그들 가운데 여전히 분열의 죄와 음란의 죄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왜 고린도교회 가운데 그런 죄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린도교인들이 참으로 믿음이 있어서 그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안다면 어떻게 그들이 계속해서 서로 싸우겠습니까?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살아계셔서 그들을 지켜보고 계심을 안다면 그들이 어떻게 여전히 음란의 죄를 지으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절대 그런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또 만일 그런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그들 속에 계심을 믿는다면 그들은 죄를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을 믿는다면 죄를 회개하고 난 다음에 다시는 그런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순히 서로 하나 되지 못한 죄입니까? 음란한 죄입니까?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그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절대 서로 싸울 수 없고, 절대 음란의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따라해 보겠습니다.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잘 믿어야합니다

우리도 그동안 서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말씀대로 잘 살아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신을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서로 하나 되자 서로 사랑하자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 잘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운데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루 24시간 월화수목금토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말씀대로 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4시간 예수님 바라보기를 하면서 영성일기를 쓰시는 어떤 성도님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24시간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 오후에 집을 나서는데 마음속에 다짐이 생긴다. "그래 오늘 한번 주님과 함께 달려보자!" 차에 시동을 켜며, 오직 주님만 의지할 것을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리고 주차장입구를 나섰다. 나와 함께하실 주님을 염두에 두며 아파트 단지 출입문에서 차도로 진입할 순간을 기다렸다. 좌측을 보니 멀리서 차 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 같으면 한발 빨리 쌩하고 차도로 진입하였을 텐데 주님이 함께 있다 믿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로와 진다. 차도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변해서야 차도로 나왔다. 잘했어~ 이런 마음이 생겼다. 주님은 세상의 법을 무시하시지 않는다. '학교 앞 제한속도 30km'를 지킨다. 정한 속도로 달리니 한가롭고, 차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노란불이 깜박이는데 그냥 지나 달릴까하다가 마음이 뚝했다. 기다렸다 가자~ 네에 주님의 마음을 헤아린다. 성가곡을 따라 우물거리며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는대로 생각해 본다. 기억만으로도 착한 마음이 되어진다! 운전하며 한편으론 몰래 딴 생각을 했다. 앞지르지 마라, 끼어들지 마라, 양보해라...나의 감정을 통하여 말씀해 주시는 주님도 또한 세상의 법도를 미워하시지 않고 품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어제까지도 운전하며 귀찮고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들, 그리고 성급하고 이기심 가득했던 마음과 감정들이 바로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지 않았던 나의 본 모습이었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주님은 항상 내 안에 계시지만, 성령을 거슬러 내가 스스로 믿지 않는다면 결코 나타나 함께 하지 않으심을 깨달았다! 주님과 함께 운전하기로 다짐했던 오후, 목적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껏다. 주님~ 감사합니다! 함께하셔서... 참 잘했다! 함께하니 얼마나 좋으냐! 내 마음 속에, 주님이 함께하심이 얼마나 크나 큰 은혜인지,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진실로 느껴졌다! 주님과 함께 있다 믿는 순간, 그림자 보다 더 진득하게 붙어 함께하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하루가 24시간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지고, 나의 삶이 주의 말씀 따라 살아짐을 믿습니다! 내 육신의 힘으로 다시 눈뜨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시고, 주의 환한 빛 속으로 품어질 때까지 주님이 함께하는 은혜를 베푸소서! 아멘

/우리가 교회에서 회의할 때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믿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하고 회의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도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아니라 예수님 생각하지 않고 의견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의견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나타난다면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결국 하나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너희가 믿음이 있다면 너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만일 너희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잘 살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 번 한주간도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으시고 하루 24시간 일상의 모든 삶 가운데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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