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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강해(16)거짓사도와 다른 예수(고후11:1-15)

by 금빛돌 2015. 8. 8.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교회에 있는 거짓사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자랑)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보통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나 자랑을 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자랑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리석은 것과 같은 자신에 관한 자랑을 용납해 달라고 합니다.

왜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거짓사도들이 너무나 자신에 관한 자랑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과 거짓사도들의 자랑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거짓사도들은 자신에 관한 자랑을 함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와 자랑을 하면서 오직 예수님만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질투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질투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여기서 보면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말하고 있습니까?

정결한 처녀인 우리를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는 중매쟁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보았을 때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우리는 정결한 처녀로서 한 남편인 그리스도와 정혼 한 사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약혼과 다릅니다. 약혼이란 결혼을 약속을 해도 법적으로 완전한 부부관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정혼이란 법적으로 부부관계입니다. 그런데 정혼이란 결혼식을 하기 전에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할 때 요셉과 정혼을 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요셉도 법적으로 부부관계이지만 결혼식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최후의 심판 날을 예수님과 정혼한 우리와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우리는 정혼한 사이로서 최후의 심판 날에 결혼식을 앞둔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 예수님과 우리를 서로 중매한 중매쟁이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과 정혼한 사이로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푸짐한 혼수품이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겠습니까?

절대 푸짐한 혼수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에게 제일 크게 요구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예수님과 정혼한) 너희 마음이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여기서 진실함과 깨끗함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우리와 예수님의 중매쟁이로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거짓사도들로 말미암은 사탄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고린도교인들은 거짓사도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잠시 잃어버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거짓사도들로 말미암은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지금 어떠하겠습니까?

거룩한 질투심입니다. 그래서 2절에 사도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질투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질투심)을 내노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잃어버린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거룩한 질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사도바울도 중매쟁이로서 이 하나님의 질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지금 고린도교인들이 거짓사도들로 말미암아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순하고 깨끗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까?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지금 고린도교인들은 거짓사도들로 말미암은 바울이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믿고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른 예수란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여기서 다른 예수란 2000년 전에 오신 그 예수님 외에 다른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다른 예수님이란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다르게 해석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거짓사도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을 했습니까?

고린도교회의 거짓사도들은 예수님을 오직 물질의 풍성함만을 채워주는 박수무당처럼 해석했습니다. 박수무당은 우리에게 절대 어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박수무당은 오직 돈만 많이 내면 무조건 복을 빌어주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고린도교회의 거짓사도들은 예수님을 박수무당처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어떤 죄를 지어도 괜찮다. 거짓사도인 우리에게 돈만 많이 바치면 예수님은 너희들에게 육신적인 복을 줄 것이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린도교인들은 예수님께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어떻게 해서라도 무조건 육신적인 복만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필리핀을 가보면 온통 예수님 사진입니다. 차에도 보면 부적처럼 예수님 사진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도 예수님을 박수무당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예수님을 우리를 사고 나지 않게 하고, 육신적으로 부자가 되게 하는 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에 가면 중앙선을 침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무조건 빨리 가기 위해서 중앙선을 너무나 당연히 침범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사진으로 붙여 놓은 예수님께서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사도들이 전한 다른 예수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도 예수님을 무슨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무조건 육신적인 복만을 주는 분으로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자살한 분도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고 섬기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또 방위산업체 비리에 연루된 어떤 분도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고 섬기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분들도 2000년 전에 오신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분들은 예수님을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모든 인간적인 탐욕을 채워주는 분으로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사도들이 전한 다른 예수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단순히 내 육신적인 질병이 치유되고, 내 사업이 잘 되고, 내 가정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하는 그런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육신의 사업과 가정의 문제를 분명히 해결해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단순히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으로만 섬기는 사람은 조금만 육신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면 낙심하고 실망합니다.

만일 우리가 아직까지 예수님을 단순히 육신적인 문제만을 해결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섬긴다면 우리도 거짓사도들이 전한 다른 예수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적인 탐욕을 채워주는 다른 예수를 섬기는 것은 참된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을 받는 것이고, 십자가의 참된 복음이 아닌 기복주의적인 다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의 정결한 신부로서 우리가 믿고 섬겨야할 참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도바울은 전한 참된 예수님은 절대 우리 육신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한 분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참된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탐욕을 당신의 십자가와 함께 못 박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어야할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우리의 뜻과 탐욕과 죄악대로 살아가지 않게 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어야할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자랑을 다 죽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어야할 예수님은 나는 죽고 오직 우리 안에 예수님만을 자랑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어야할 예수님은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고, 내 육신적인 질병이 있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오직 구원의 은혜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육신적으로 아무 것이 없다하더라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 한분만으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고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고린도교인들이 예수님을 향한 진실하고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한 다른 예수 예수님을 섬기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참된 사도인 바울을 따라가지 않았고, 거짓 사도들을 쫓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고린도교인들이 거짓사도들을 따라갔습니까?

이 거짓사도들은 그들이 눈으로 보기에 광명한 천사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3-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이라도 오실 수 있는 예수님은 신부인 우리에게 지금도 예수님을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과 순수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짓사도들의 가르침에 미혹이 되지 마시고, 더욱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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