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도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고후10: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10:7. 너희는 (사도바울의) 외모만 보는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외모라고 했을 때 먼저 사도바울의 외적인 생김새입니다.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사도바울은 키도 작고, 몸집도 작고, 또 다리는 안짱다리이고, 양쪽 눈썹이 일자 눈썹이고, 코는 매부리코이고, 이마도 대머리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외모란 외적인 조건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도들로부터 받은 추천서도 없습니다. 또 말도 잘 하지 못하고, 또 외적으로 어떤 특별한 능력을 행하는 표적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삼상 16장 7절에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거짓사도들은 사도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너무 세운다고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9 1절에서도 “(내가) 사도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이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앞에 고린도전서와 눈물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8. 주께서 (내게) 주신 권세(사도의 권위)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내가 사도인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내게 사도의 권위를 주신 것은 절대 너희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세우려고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지금 사도바울이 자신이 사도인 것을 강조하며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절대 고린도교인들 위에 군림해서 그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아서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닮는 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가진 사도로서의 권위는 섬김의 권위였습니다.
지배의 권위는 지도자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권위입니다. 그러나 섬김의 권위는 자기는 희생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들을 살리는 권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주신 사도의 권위는 너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사도인 것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자랑해도 그것이 잘못되거나 지나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거짓사도들이 바울을 어떻게 비난하고 있습니까?
10. 그들(거짓사도들)의 말이 그(바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사도바울의 편지의 글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그를 만나서 보면 약하게 보이고 말도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이 말속에는 거짓사도들의 은근한 자랑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던 거짓사도들은 외모를 보았을 때 아주 강하고 힘이 있게 보였습니다. 또 무엇보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던 거짓사도들은 모두 말을 잘했습니다.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에도 말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거짓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멋지게 말을 잘하는 만큼 훌륭한 철학자로 인정을 받았고, 말 잘하는 것에 따라서 수입이 정해졌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도시에 있는 거짓 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까 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거짓선생들도 그 거짓 철학자들과 같이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11. 이런 사람(바울을 보고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하는 거짓사도들)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사도바울은 자신을 보고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던 거짓사도들에게 우리가 너희를 떠나 있을 때나 또 편지를 쓸 때나 또 너희가운데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행하는 일이 다 같았다는 사실을 알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거짓사도들은 말은 잘 했지만, 그 말과 그들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너희를 떠나 있을 때나 편지를 쓸 때나 너희가운데 있을 때 모든 말과 행동이 같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참 사도의 거짓사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거짓사도들은 말은 잘했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사도인 사도바울은 말은 어눌했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고후 11장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 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여기서 보면 “나는 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에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세상적인 철학이나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말을 멋있게 잘 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참 사도와 거짓 사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참 사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전합니다. 그러나 거짓사도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철학이나 인간적인 지식이나 지혜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2: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그리고 딤후3장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전하는 자를 쫓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거짓사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거짓사도)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평가하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거짓사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어떤 단어입니까? 자기라는 단어입니다. 다섯 번 나옵니다.
여기서 거짓사도들은 먼저 자기를 내세우고 칭찬하는 자들입니다. 이 거짓사도들이 자기를 내세우고 칭찬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내세우고,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를 평가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제일 잘 났고 똑똑한데, 그 기준에서 나를 보았을 때 내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기를 보니까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기가 제일 잘 났다고 자기를 평가하고 자랑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만 옳고 나만 똑똑하고 나아닌 다른 사람들은 다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사도들은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도 그들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참사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 사도인 사도바울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까?
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기준-말씀)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거짓사도들은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지만, 참 사도인 사도바울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신 기준에 따라서 행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기준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나니아 선지자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은 전하기 위한 그릇이고 말씀하셨습니다. 행9장15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3절 하반 절에 이렇게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 말씀의 기준을 따라서 지금 이방 땅인 고린도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모든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거짓사도들은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입니다.
이렇게 모든 기준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둔 결과가 어떠합니까?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주님만을) 자랑할지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8절을 보겠습니다. “18. (참된 사도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가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오직 주님만을 자랑함으로)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거짓사도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자랑하고 내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참 사도는 자기를 칭찬하고 자랑하고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만을 자랑하는 자를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여러분들은 고린도교회의 거짓사도들이 그 당시에 더 인기를 끌었겠습니까? 아니면 사도바울이 더 인기를 끌었겠습니까? 거짓사도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후6장에 “나는 너희들이 보기에 무명한 자 같으나” 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누가 더 성공한 사역자 같았겠습니까? 거짓사도들입니다.
그들은 화려한 말기술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그로 인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고,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거짓사도들은 지금 아무 것도 남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더욱이 마지막 심판 때에 그들의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았을 때 거짓사도와 참 사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첫째, 거짓 사도는 인간적인 외모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참 사도는 인간적인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중심을 중시하는 자입니다.
둘째, 거짓사도는 성도들 위에 지배하고 군림하여 결국에는 성도들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죽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참 사도는 오직 섬김으로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자들입니다.
세째, 거짓사도는 말은 잘 했지만,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 사도는 말과 행동이 일치했습니다. 또 거짓사도는 세상적인 철학이나 미사여구로 사람을 미혹했지만, 참 사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네째, 거짓사도는 모든 기준을 자기 자신에 두고 오직 자기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참 사도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에 두고 오직 주님만을 자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짓사도는 당대에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 사도는 당대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는 자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시대에 참 사역자와 거짓사역자들을 잘 분별하셔서 주님께 칭찬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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