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질문을 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들만이 구원을 얻고,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질문을 한 유대인은 그들은 당연히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24절에 보면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구원을 얻지 못할 자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자신들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사실은 너희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도 하나님나라의 표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너는 하나님나라에 들어오지도 못한 자라는 뜻에서 거듭나야 하나님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25절에서 “집 주인이 일어나 (구원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구원의)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26절에서 “그 때(심판 때)에 너희가(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고 말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성찬식에 참석했고, 또 주님의 말씀으로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심판 날에 왜 모른다고 말씀하십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27절과 28절에서 “그(하나님)가(이)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참)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또 다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9절과 30절에 보면 “사람들이(이방인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이방인으)로서 먼저 될 자(구원을 받을 자)도 있고 먼저 된 자(유대인으로)로서 나중 될 자(구원받지 못할 자) 도 있느니라하시더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자신들만 구원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왜 결국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들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돌로 쳤습니다. 또 이렇게 참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돌로 쳤어도 하나님께서는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계속해서 사랑함으로 부르시고 모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 때부터 참선지자들을 죽였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예수님조차도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참선지자를 죽였고, 예수님조차도 거부하여 죽이려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이 유대인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심판 날에 나는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우리가 성찬식에도 참석했고, 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아니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우리를 모른다고 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절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선지자를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죽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믿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내 생각과 뜻에 맞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죽이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죽인다면 그 사람은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죽일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말씀 앞에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의 참 모습입니다.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갈 때 내가 죽고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미국에서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동성애가 합법이라고 하는 법률 때문에 스스로 판사의 직에서 물러났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난주 어떤 청년이 자신의 극단에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돈이 된다고 해서 동성애를 주제로 연극을 하려고 해서 어떻게 이것을 막을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구원 얻는 길은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좁은 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구원의 길을 걸어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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