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빠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작은 자란 실제로 어린아이거나 믿음에 있어서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 자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3절에 보면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합니다.
또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와서 회개하노라 하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은 소자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데도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6절에서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더 큰 믿음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작은 믿음이라도 있으면 뽕나무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큰 믿음이 있다고 해서 하루에 일곱 번씩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용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어서 7-10절까지 종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종은 주인에게 절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종은 순종하고 난 다음에 그 순종에 대한 댓가를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주인이) (종에게) 명(령)한 대로 (순종)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종은 순종하고 난 다음에도 “10,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서는 용서란 순종의 문제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보았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는,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온전한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큰 믿음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 속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작은 믿음이라도 좋습니다. 내가 작은 믿음이라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위대한 4대 성인,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는 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한없이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믿음이 작아도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시면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게 용서를 구하는 형제조차도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 오래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하루 일곱 번씩 아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얼마든지 용서해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용서란 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가 감정상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란 감정상으로는 용서할 수 없어도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해야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순종해야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할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은 용서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만 할 뿐입니다. 또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다고 해서 정말 대단다고 칭찬하거나 사례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거저 나는 주님 앞에 무익한 종 그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라고 해야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이렇게 감정상으로 용서할 수 없지만, 순종함으로 용서하면 진짜 용서할 수 있는 감정이 생깁니다. 또 용서하는 자에게는 그 사람을 미워함으로 인한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또 용서하는 자에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놀라운 은혜를 받으시기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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