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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누가복음

집안의 탕자(눅15:25-32)금요기도회

by 금빛돌 2015. 3. 27.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를 보통 탕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눅15장에는 두 명의 탕자가 나옵니다. 한 탕자는 집을 나간 탕자이고, 또 한 탕자는 집안에 있는 탕자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는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키고, 또 집 안에 있는 탕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이 탕자의 비유를 하신 것은 먼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염두 해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눅151절과 2절을 보면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맏아들이 집안에 탕자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들이 집안에 있는 탕자입니다.

또 어떤 분은 오늘 본문의 비유를 아버지가 있는 고아의 비유라고 합니다. 지금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모두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은 고아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맏아들은 아버지의 잔치에 참석하지도 않고, 아버지의 기쁨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는 고아였습니다.

그러면 맏아들을 통해서 본 집안의 탕자이고, 아버지가 있는 고아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먼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5절에 보면 맏아들은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고 있었을 때 밭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 맏아들은 모범생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고, 또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재산을 탕진한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맏아들은 구원의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자신의 그 어떤 행위나 공로가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잔치에 참여한 자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행위로 구원을 받아보려고 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실재로 이 맏아들은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전혀 참석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어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에 나와서 기쁨으로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천주교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을 천주교생활을 했습니다. 특별히 천주교인들로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위에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아보려고 착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자신이 완전히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항상 구원을 얻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보니까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완성해 보려고 하는 천주교인이 이 사람을 보고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죄인들이지만 은혜로 구원 받음으로 하나님나라의 영광스러운 잔치에 이미 참여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26절에 보시면 맏아들은 아버지를 부르지 않고,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인가를 물어봅니다.

28절에 보면 맏아들은 아버지에 대하여 노하면서 잔치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29절에 보면 맏아들은 아버지께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12절 하반 절에 보면 “--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맏아들도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 것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31절을 보면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합니다.

/이 맏아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만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누가복음을 보면서 끊임없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봅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화에 대해서 6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화는 십일조는 잘 드리면서 율법의 참된 정신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화는 43절에서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것을 좋아는 것이었습니다. 또 세 번째 화는 44절에서 바리새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게 보이나 속은 썩은 송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토장한 무덤이란 봉분이 없기에 그것이 무덤인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썩은 송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볼 때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죽은 송장과 같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47절에서 서기관들에 대한 다섯 번째 화는 그들이 구약의 참된 선지자들을 기념하는 무덤을 만들면서, 실제로 지금 그들은 참 선지자들을 죽이고, 또 참 선지자인 예수님도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화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하는데, 그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고 막는 것이었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실 때, 안식일에 있을 했다고 그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했습니다.

또 눅1614절에 보면 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청지가의 비유를 드시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었습니다.

또 눅18장에 보면 이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할 때도 자신들은 의롭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죄인 취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눅1814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저는 중학교 때 복음서를 읽으면서 나는 절대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는 자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평생 다짐하고 결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결국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은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신학 공부 평생 해도 하나님 모를 수 있다. 신학박사들이 간음을 더 많이 한다고 믿는다 면서 이들이 신학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기를 칠 수도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주변의 교회 사람들을 살펴보자. 하나님을 더욱 진실 되고 분명하게 알기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내려놓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되는가? 대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지식으로 죄를 짓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간음하는 신학박사들의 수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당신이 신학 공부를 40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하면서도, 하나님을 삶의 가장 귀한 보물이자 아름답고 모든 것을 만족시키시는 분으로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존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고, 만족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의 오른손에는 기쁨이 있고, 그의 임재 가운데 영원한 기쁨이 있다. 이는 당신이 10,000번의 성적인 밀회를 갖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시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서 그를) 안다면, 죄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배부른 자들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율법적은 행위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자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우리를 회칠한 무덤과 같고,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을 막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오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처럼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대해서도 원망 불평하고, 또 모든 일에 원망 불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 오후예배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만족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만족이란 히카노스란 말로서 구약성경에서는 전능하신 분, 충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범위에 있어서도 충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인 세계와 이 땅의 모든 세계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는 영육간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에 있어서도 충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결코 우리에게 충분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쁨 즐거움을 채워주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1611절에서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한 분의 사랑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신비한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특별한 경건의 모습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해서 기도의 특별한 단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밖에 없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았어도 하나님아버지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받으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아버지를 지금 당장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우리 안에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랑하는 모든 의를 배설물과 같이 여겨야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다는 것, 내가 주님께 충성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과 같이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내가 기도의 열심히 부족했다는 것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기도가 부족해도 예수님을 십자가만을 단단히 붙잡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열심히 기도했다해도 그것 의지하지 마시고, 나를 위해서 겟세마네에서 흘리신 그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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