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연구/누가복음

잃은 것을 찾는 비유(눅15:1-10)

by 금빛돌 2015. 3. 14.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잃은 양을 찾는 비유가 나옵니다. 또 밑에 나는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비유도 내용은 같습니다. 마태복음에도 보면 같은 잃은 양을 찾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같은 잃은 양의 비유인데, 그 잃은 양의 비유를 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오늘 본문 눅151절과 2절을 보면 잃은 양의 비유를 하는 대상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올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 것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있을 때 하신 비유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잃어버린 어린 양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에 사는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가운데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주님 앞으로 데리고 오면,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서로 기뻐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데리고 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잃은 양의 비유이지만, 마태복음에서는 그 대상이 다릅니다.

181절을 찾아보겠습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리고 그 밑에 마태복음 18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여기서 보면 같은 잃은 양의 비유이지만, 181절에 보면 이 비유를 주신 대상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더 큽니까 라고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내세우시면서, 천국에서는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186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 작은 소자는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여러분 교회에서 누가 서로 높으냐를 가지고 제자들과 같이 서로 싸울 때 제일 크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어린아이들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누가 서로 높으냐를 가지고 서로 싸울 때 상처를 입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크냐를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제일 상처를 입을 사람들이 바로 그 제자들을 바라보는 믿음이 약한 자들, 어린이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믿음이 약한 작은 자들이 상처를 입어서 믿음의 무리에서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를 가지고 싸울 때, 누구든지 나를 믿는 믿음이 작은 자중에서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아서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잃은 양의 비유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서 말씀하는 잃은 양은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에 있는 죄인들이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는데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고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실족한 믿음이 작은 소자들이겠습니까?

누가복음에서는 잃어버린 양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잃어버린 양은 예수를 믿는데,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실족한 믿음이 작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작은 자들 중에서 이제 믿음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잃은 양의 비유라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 밖에 예수를 믿지 않는 죄인들이 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의 잃은 양의 비유는 너희가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전도해서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교회 안에서 누가 서로 높으냐를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하게 하면 절대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가 중요하겠습니까?

아니면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를 잘 돌아보고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둘 다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안의 문제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을수록 더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교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교회가 서로 두 파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믿지 않는 영혼을 전도하는 일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그 어떤 문제가 있어도 전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어야합니다. 그리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안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통해서는 우리가 세상밖에 잃어버린 한 영혼도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를 돌아보는 일도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를 돌아보지 않고, 세상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에게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을 보았을 때 교회 안의 문제 때문에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만일 교회 밖에 잃어버린 양만 생각하고,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영국의 어느 선교사가 평생을 인도해서 선교를 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그 곳이 선교지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전도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어도 전도해야하고 선교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도만큼이나 교회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교회 안에서 믿음이 약한 자를 돌아보는 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세상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만 아니라 교회안에 믿음이 약한 자를 돌아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더라도 자신의 동족이 예수님께로 돌아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후2:12-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전도의)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드로아에 갔는데, 거기서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드로아에서 전도의 문이 열렸는데도 전도하지 않고, 마게도냐로 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보다 중요한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입니다. 원래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서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드로아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다시 마게도냐로 가서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습니다. 결국 마게도냐에서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크게 기뻐했다고 고후7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5:7-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