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에 대해서 책망하신 말씀들입니다.
37절을 보시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과 점심 식사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쁜 목적이 아니라 단순하게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보니까 예수님이 식사를 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아니하는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기 전에 위생상의 목적만 아니라, 세상에서 지은 죄를 깨끗이 씻는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39절과 40절에서 예수님은 “39b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고 합니다.
그리고 41절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겉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 깨끗해야한다고 말씀하시고, 그 안에 것으로 구제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그 안”이란 “마음 안으로”부터라는 뜻으로 마음으로 진정한 구제를 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깨끗한 채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벌어서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진정으로 안과 밖에 깨끗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가 부정하게 쌓아둔 제물을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깨끗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여섯 가지 화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비난과 비판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화는 십일조는 잘 드리면서 율법의 참된 정신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은 내 모든 소유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면서 내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공의롭고, 또한 사랑이 있는 삶입니다.
공의란 정직한 삶이고, 사랑이란 모든 것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만일 사랑만을 강조하고 공의가 없으면 그것은 거짓된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전에 먼저 공의롭고 정직해야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공의나 정의를 말하면 사람들은 사랑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공의가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또 공의만을 말하고 사랑이 없으면 그것도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공의롭고 사랑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없이 십일조만 잘 드린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화는 43절에서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것을 좋아는 것이었습니다.
또 세 번째 화는 44절에서 바리새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게 보이나 속은 썩은 송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토장한 무덤이란 봉분이 없기에 그것이 무덤인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썩은 송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볼 때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죽은 송장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45절에서 한 율법교사가 선생님 왜 우리까지 모욕하십니까 라고 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바리새인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율법사-즉 서기관들은 그 말들이 자신을 향한 말처럼 들려서 왜 우리까지 모욕하십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네 번째 화부터는 율법교사들에 대한 화입니다. 율법교사들은 지기 어려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47절에서 율법사들에 대한 다섯 번째 화는 그들이 구약의 참된 선지자들을 기념하는 무덤을 만들면서, 실제로 지금 그들은 참 선지자들을 죽이고, 또 참 선지자인 예수님도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로 말하면 우리가 종교개혁자들을 기념하고, 또 순교자들을 기념합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자들을 기념하고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가 마치 이 시대의 종교개혁자들이고, 이 시대의 순교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삶을 보면 그 종교개혁자들은 죽인 자들과 같으며, 그 순교자들을 죽인 자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교개혁행사를 하면 순교기념행사는 하면서 지금은 내가 이 시대의 종교개혁자고 순교자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화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하는데, 그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고 막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53절과 54절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혹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 아닌지 살펴보아야합니다.
우리가 초신자 때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또 남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오르면 이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같이 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내 속에 바리새인이 없는지 서기관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항상 어린아이과 같은 심정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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