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질문을 한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나라가 정치적인 모습으로 눈에 보이게 임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오면 전세를 정치적으로 통일하고,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는 눈에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마음가운데 임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신천지에 관한 영상을 보니까 신천지에 빠진 자매가 결정적으로 신천지에게서 돌아서게 된 구절이 바로 이 구절이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이 땅에 신천지가 그들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게 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 상담가가 이 구절을 말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임하는 것이라는 이 구절을 말하니까 그때부터 신천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나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나라는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마음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란 먼저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주로 믿어 모심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주인이 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나라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첫째는,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다 맡기는 삶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때 나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가 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밤 새워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 삶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하나님나라의 삶은 모든 염려와 근심을 예수님에게 다 맡기는 삶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기 전에는 나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나의 생각이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죽어도 싫어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끝까지 미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은 절대 내 기분과 감정, 내 생각이 주인이 되는 삶이 아닙니다. 모든 삶의 순간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감정상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무조건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삶은 내 안에 내가 없는 삶입니다.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내 안에 주 되신 예수님과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하는 삶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는 하나님나라의 삶이란 예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주 되신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과 교통하고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교통하교 교제함으로 우리 안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로마서14장17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가에서도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주로 섬기는 하나님나라는 이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가운데 나타나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가 예수님을 믿는 너희 마음가운데 있다고 하니까 하나님나라가 단순히 우리의 마음속에서만 머무른다고 생각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주로 섬기는 사람은 그들의 삶속에서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을 마음의 주로 섬기는 사람은 가정에서도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삶입니다. 또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삶은 교회 생활에서도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삶입니다. 또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삶은 세상의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예수님이 주가 되는 삶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데,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따라서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영적인 세계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왕이 되시고 주가 되십니다. 이 말은 현재에도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게 통치하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시게 전 세계를 왕으로 통치하시는 때는 이 모든 세상이 끝이 날 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기에 통치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가 아니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주가 되시는 분만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시고 온 세상의 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의 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과연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오늘 이 하루도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로 모시고 섬기면서 살아감으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오직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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