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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큐티나눔25

비둘기 발 붙일 곳도 없는 세상(창8:1-14) 비둘기는 홍수로 물이 찬 세상가운데서 발 붙일 곳이 없어 다시 노아에게 돌아왔다. 여기서 발 붙일이라는 단어는 안식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비둘기의 작은 발조차도 안식할 곳이 없다. 그러나 까마귀는 물이 가득찬 세상에서 죽은 시체를 먹을 수 있어서 돌아오지 않았다.나는 까마귀 신자인가? 비둘기 신자인가? 까마귀신자는 아무 것이나 먹는다. 세상의 것에 안식한다 그러나 비둘기 신자는 아무 것이나 먹지 않는다. 세상에서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다. 노아의 이름은 안식이다.노아는 예수님을 예표한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만 비로소 안식할 수 있다. 오늘도 예수님안에서만 안식하는 비둘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1. 11. 22.
10월29일(금)신앙은 기다림이다(창7:1-16) 하나님은 12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다. 그리고 방주로 들어가라 하셨다. 그런데 또 7일을 기다리게 하신다(10). 왜 그럴까? 신앙은 기다림이기때문이다. 기다림가운데 신앙이 있기때문이다. 신앙이 없으면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신앙이란 무엇인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말씀만 붙드는 것이다. 욥을 보라. 그에게 무엇이 보였는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가 믿었던 것과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래도 끝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신앙이란 그 무엇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도 말씀만 믿음으로 살게하옵소서. 2021. 10. 29.
10월28일(목) 장례식에 결혼식축가를(창6장9-22) 간사하시던 목사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연세도 66세 밖에 되지 않는다. 장례식때 결혼축가를 불렀다. 아마 목사님이 그렇게 부르라하신 것 같다. 왜 장례식에 결혼축가를 부르라 했을까? 성도의 죽음은 주님과의 혼인잔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주님과 정혼한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주님과 연애하는 것이고 우리가 죽는 것은 주님과 혼인잔치하는 것이고 죽음이후의 삶은 주님과의 영원한 신혼방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신다 언약이란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결합시키셨다. 그래서 우리를 주님의 영원한 신부로 만드셨다. 오늘도 주님과 연애 하는 하루기 되기를 바랍니다. 2021. 10. 29.
10월 27일(수) 실패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다(창6:1-7) 하나님은 실패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500년 동안 자녀를 낳지 못한 노아를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행하신다. 밤새워 물고기를 집으려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집지 못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40년 동안 실패의 광야를 걸었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불꽃가운데 찾아오셨다. 지금 시대는 실패를 양산하는 시대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실패는 은혜의 기회다. 실패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다. 그러니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그것을 은혜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실패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2021.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