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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큐티나눔25

10월 26일(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창5:1-32) 김영민 교수는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교수님은 삶이 어려울 때마다 죽음을 생각한다고 했다. 죽고 싶어서 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에 사후의 명성 따위는 당사자에게 가치가 없다". 그러면서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가질 수 없었던 명예에 대한 아쉬움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밸트를 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침 오늘이 박대통령이 돌아가신 날이다. 또 어제 66세 된 간사 선배님이 돌아가셨.. 2021. 10. 29.
10월 25일(월) 창4:17-26 고통가운데 있는 인간 셋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에노스라 할때 그 때에 비로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에노스는 성경에 치료가 불가능한 인간. 재난을 당하거나 고통가운데 나타는 인간을 나타낼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놀라운 것은 셋아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고통가운데 있는 인간이라는 뜻에서 에노스라 할때 그때 부터 비로서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땅에서의 삶이 고통이요 수고요 슬픔이라는 사실을 알때 비로서 우리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은 우리로 절망하게 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고통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십니까?아니면 고통때문에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2021. 10. 29.
10월 23일(토) 왜 방황하십니까?(창4:8-16) 하나님은 범죄 한 가인에게 너는 땅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에 대해서 방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뵙겠습니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떠나 방황하다는 뜻을 가진 놋 땅에 거주합니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습니다. 그도 내가 어떻게 아버지의 얼굴을 뵙겠습니까?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께 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절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렘브란트는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을 기다리다가 눈이 멀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모습이 한 쪽은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한 쪽은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먼저 내게로 오라하십.. 2021. 10. 23.
10월22일(금) 의로움도 헛되다?(창4:1-7) 여러분 혹시 아벨의 뜻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헛되다 입니다. 전도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헛되다(헤벨)가 아벨에서 나왔습니다. 또 이 아벨은 연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연기는 금방 사라집니다. 마치 인생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제사 잘 드렸다가 죽음으로 인생이 연기처럼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벨이란 헛되다 구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롭게 사는 것이 헛되니 의롭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의롭게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의롭게 살아도 인생이 헛될 수도 있습니다. 의인도 고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아서 헛되어도 너희는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아도 연기처럼 죽을 수 있어도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 뒤편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 2021.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