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하시던 목사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연세도 66세 밖에 되지 않는다. 장례식때 결혼축가를 불렀다. 아마 목사님이 그렇게 부르라하신 것 같다. 왜 장례식에 결혼축가를 부르라 했을까? 성도의 죽음은 주님과의 혼인잔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주님과 정혼한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주님과 연애하는 것이고 우리가 죽는 것은 주님과 혼인잔치하는 것이고 죽음이후의 삶은 주님과의 영원한 신혼방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신다 언약이란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결합시키셨다. 그래서 우리를 주님의 영원한 신부로 만드셨다. 오늘도 주님과 연애 하는 하루기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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