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지혜가 더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우리가 어릴 때는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 학생들은 열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다 많이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약1장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지혜를)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여러분 특별히 여기서 지혜란 어떤 지혜입니까? 1장의 문맥을 시험이 있을 때 필요한 지혜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시험이 있습니까? 그 시험가운데 지혜가 필요합니까?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지혜를 후히 주시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때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지혜를 이 세상에서 가장 충만하게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솔로몬 왕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대하1: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대하1:11.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12.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솔로몬은 지식보다 지혜를 더 앞세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만 아니라 그와 함께 부와 재물과 영광도 줍니다.
그래서 약1장 6절과 7절에 “약1:6. (지혜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지혜)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일이 있을 때 절대 조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맨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혜를 반드시 주시고, 또 풍성히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지혜가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진정한 지혜입니까? 지혜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잠언 9장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절대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어떤 지혜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두 가지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귀신적인 지혜입니다. 또 하는 위로부터 하나님에게서 온 지혜입니다.
먼저 세상적이요, 귀신적인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14절과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세상적이요 귀신적인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는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한 시기가 무엇입니까? 남이 잘되는 것을 도무지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남이 잘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잘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깎아내리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독한 시기에는 반드시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시면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온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17절입니다.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위로부터 온 질혜는 첫째, 성결입니다. 성결이란 하나님을 향해서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것은 성결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8절에서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성결이란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십까? 돈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마음속으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사랑방에는 오직 하나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히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눅16:13).
그러면 여러분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주십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이 지혜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돈을 더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돈을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눅16: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서 불의한 재물이 무엇입니까? 불의한 재물이란 불의하게 얻은 재물이 아닙니다. 또 불의한 재물이란 재물 자체가 불의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서 불의한 재물이란 영원하지 않은 재물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죽을 때 돈을 가지고 저 세상에 갈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수십조를 가지고 있었던 이건희 회장도 돈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불의한 재물, 즉 영원하지 않는 재물, 죽으면 없어질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게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다른 사람에 밥을 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친구로 사귑니다. 또 내게 있는 돈으로 그 사람을 섬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친구로 사귐니다.
뿐만 아닙니다. 내게 있는 돈을 사용해서 전도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떤 면류관을 섭니까? 빌립보서 4장 1절에 사도바울은 “빌4:1.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서 서게 될 면류관은 우리의 직분이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명예도 아닙니다. 우리가 없어질 재물로 사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없어질 재물로 구원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함으로 물질로 더 많은 사람을 친구로 사귈 수 있는 지혜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그 다음에는 화평입니다. 마귀적인 지혜는 다툼과 분열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온 지혜는 서로 하나 되게 하고 화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3)또 그 다음에는 관용입니다. 관용이란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너그럽게 품고 용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품고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대 위로부터 온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4)또 그 다음에는 양선입니다. 양선이라는 “쉽게 순종하다. 고분고분하다’란 뜻입니다. 이것은 완고하고 거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부드럽게 된 마음을 말합니다.
5)또 위로부터 온 지혜는 긍휼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6)또 위로부터 온 지혜는 편견이 없어야합니다. 편견이란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너무 치우치게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7)마지막으로 위로부터 온 지혜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지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지혜의 특징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해야합니다. 이것이 성결의 지혜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화평하게 하신 것을 우리도 힘써 지켜나가는 것이 위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또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너그럽게 관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관용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부드러워야합니다. 이것이 양선의 지혜입니다.
또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치우치지 않게 공평하게 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편견이 없이 서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하게 대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외식됨이나 거짓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위로부터 온 지혜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 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화평입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온 지혜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에 어떻게 말씀합니까?
18절입니다.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위로부터 온 지혜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화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화평은 먼저 성결이 앞서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는 성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만일 하나님만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화평은 거짓된 화평입니다. 그러나 성결만을 부르짖으면서 화평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지혜가 아닙니다.
여러분 성결하되 화평을 잃어버리지 않는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화평으로 의의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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