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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야고보서

야고보서강해⑧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2:14-26)

by 금빛돌 2013. 5. 4.

여러분들은 야고보서가 믿음을 강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행함을 강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면 행함을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더 자세히 보면 사실 믿음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믿음이 구원받는 참 믿음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7절과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그리고 행함없는 믿음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즉 행함 없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있는 믿음이 구원을 얻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구원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그런데 우리는 야고보서를 볼 때 우리의 믿음에다가 행함을 더해야 마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다른 복음입니다.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천주교나 안식교에서는 믿음에다가 행위를 더해야 구원을 얻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고보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야고보서도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는 말은 인간의 외모나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행함이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것은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은 행위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행함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즉 행함 없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결론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 두 번째 질문은 그 믿음 즉 행함이 없는 믿음/즉 죽은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합니다. 결론은 행함이 없는 믿음, 즉 죽은 믿음은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 아무 유익이 없는 예로서 15절과 16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여기서 형제 자매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 형제 자매를 말합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형제 자매가 그날 하루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또 헐 벗었다는 말은 거의 옷을 입지 않은 가난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형제 자매를 보면서 믿음이 있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 말로만 평안하십시오, 추운데 따뜻하게 사십시오, 배고픈데 많이 배부르게 잘 먹고 사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로만 하고 실재로 아무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은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 형제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주어야합니다. 만일 춥게 산다면 내가 할 수 있는데로 도움을 주어야합니다. 그래야 그 믿음이 참으로 형제 자매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하는 믿음은 교회 안의 형제 자매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런 믿음은 믿음 자체가 죽은 믿음이기에 그런 죽은 믿음을 가지고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4절 상).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심지어 귀신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로 제일 먼저 고백한 자가 바로 귀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어떻게 말합니까? 8:29. 이에 그들이(귀신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합니다. 이전까지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를 상관하시고, 간섭하려면 우리가 돼지 떼에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돼지 떼에 들어가 죽습니다.

그래서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는 아브라힘과 라합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브라함을 통해서 볼 때 구원받는 참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413절에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4: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브라함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믿음입니까? 행함입니까?

여러분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친 것은 믿음입니까? 행함입니까?

창세기 2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러분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무엇을 시험하려고 하십니까? 믿음입니까? 행함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1117절에 보시면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22장의 시험은 믿음의 시험이었습니다.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그의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그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점점 더 온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22장에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네가 보거니와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독자 이삭을 바치는) 행함과 함께 일하고 (독자 이삭을 바치는) 행함으로 (15장의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여 독자 이삭을 바치는 행함으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관한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15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22장에서 이삭을 바치는 행함으로)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친구)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그러니까 창15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여겨셨다는 말씀이 창22장에서 이삭을 바치는 행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24. 이로 보건대(아브라함의 경우를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구윈을 받고)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았을 때 구원받는 참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여러분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믿고 있습니까?

믿고 있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이삭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내 삶 가운데서 하나님 이것만을 절대 안 됩니다. 이것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고 하는 이삭이 무엇입니까? 그 이삭을 과연 하나님께 다 바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들의 믿음은 거짓된 믿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원받는 참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삶 가운데서 가장 귀한 이삭을 바쳐도 전혀 아깝게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내 삶 가운데서 가장 귀한 이삭을 죽여도 절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지 아니하시고 살려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믿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내 삶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을 죽여도 하나님께서 죽이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살려주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또 이어서 기생 라합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에는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준 것은 믿음이었다고 히브리서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주는 행위는 자신의 민족에 대해서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만일 발각이 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리고 성에서 가나안의 신에 대해서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라합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동족들에게 돌로 맞아도 전혀 개의치 않는 믿음입니다. 가나안의 거짓 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세상사람들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신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들이니까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세상 사람을 두려워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세상의 신을 두려워하십니까?

우리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탄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라합처럼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그 믿음이 행함을 통해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7:12 누구든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산상설교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삶이고, 용서하는 삶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삶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강조하는데,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나타나는) 믿음뿐이니라

/그래서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정말 믿음으로 구원 얻는 자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이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가난한 형제 자매를 돌아보는 긍휼의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1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어떤 사람이 나는 행함만 있고, 너는 믿음만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말이라고 합니다. 즉 나는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면 행함으로 보여야합니다.

입으로만 나타내지 말고, 또 지식으로만 나타내지 말고, 우리의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나야합니다.

/그래서 나의 믿음이 사랑과 긍휼의 삶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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