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호수아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시오.
여호수아서는 크게 약속의 땅의
정복사업(1-12)과 기업분배(13-24)의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2.여호수아서의 중심주제를 말하시오.
여호수아 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세 가지의 주제가 있다. 하나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가나안땅 정복에 나타난 거룩한 전쟁 사상이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 중의 범궤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주제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는 주제로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져 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포괄적인 주제-땅
약속의 성취-땅 약속은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관계있다).
먼저 여호수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수1장에 잘 나타나 있다. 수1장에서 여호수아가 당한 형편이 어떠한가? 먼저 그의
주인이자, 이스라엘의 1세대 지도자였던 모세가 죽은 후 였다(1:1). 이것은 그에게 굉장한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출애굽과
광야의 생활에서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큰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모세가 죽은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지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을 정복하라는 과업이 부여되어졌던 것이다(1:2). 이것은 그에게 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요단강은 그 어느 때보다 물이 넘치게 흐르고 있던 때였다(3;15)
또한 가나안땅에서는 가나안의 여러족속들이 유랑민족인 이스라엘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은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극히 담대히 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네 앞에 놓여져 있는 현실이 이러하니까, 너는 기죽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초인적인 임으로 가나안땅을 정복할
준비를 하라"고 해석해서는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중심주제를 거의 놓치고 만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듬과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1:6-9.여리고 성을 돌 때를 생각해 보라)
문/.여기서 말하는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하나? 부동산 획득?, 하나님나라
건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길을 형통케 하셔셔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수아 개인에게 주신 말씀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신 말씀이다. 즉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땅을 여호와의 힘으로 정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전쟁사상을 읽을 수 있다. 즉 가나안땅에서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여호와의 전쟁 참조). 그런데 우리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여호와의 전쟁사상에서 부가되어지는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 편에서 율법의 순종과 하나님 편에서의 법궤의 역할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싸우시는데, 이것은 그들의 말씀순종의
여부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여리고성과 아인성의 싸움 참조,5:2-9의 할례사건참조).
그러면 우리가 또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그들의 말씀순종여부에 달려 있다면, 결국 이스라엘의 공로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이
정복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것을 결코 그렇지 않다(신9:5-6)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의 백성인 것을
나타내는 표시이다(여리고성의 싸움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여호와의 편에 속하여 있다는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편에 속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주시는 것이다.
(말씀순종은 자판기식의 응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는
행위이고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여호와의 전쟁에서 인간의 순종여부도 승리의 요건이 될 수 있으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이 되는 것이 바로
법궤이다(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거주하여 계신 곳이 성막인데, 그 성막의 중심이 법궤이다. 이 성막은 신약시대에는
임마누엘의 유일한 표적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대치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승리의 주역은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여호와의 전쟁에서 법궤를 앞세우고 나가서 이기게 되는 것이다.(수3:6,수6:6,11.10:8)
그러면 법궤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법궤에는 십계명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들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물건들을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떤 마술적인 신비한 힘을 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백성들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를 지적하는 것이다.
문/.법궤 안에 든 세가지의 물건이 어떻게 이스라엘백성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를 죄를 드러내는
것이냐?
.십계명-출32,
.만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8-10
그런데 이러한 법궤 위에 시온좌가 놓여져 있는 것이다. 바로 그위에 어린양의 피가 뿌려지는 것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법궤 안을 본다면
그들의 죄와 불순종과 원망함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 위에 뿌려지는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덮어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법궤는 결국 유월절의 정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출애굽과 유월절에 나타난 이스라엘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정신이 법궤 위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백성이 여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죄악된 가나안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을 때 임마누엘이 실현되어지는 것이다.
문/.하나님의 구속사의 물줄기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따라 진행되어진다는 것을 다음의 사건들을 통해서 설명해 보시오.
.셈의
선택,족장들의 선택,유다의 선택(창38),이스라엘의 출애굽,다윗의 참회 (시51)
이와 같은 여러가 지의 주제들을 종합해 볼 때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땅이 어떻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15:18-21,수24:1-13)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 여호수아의 순종과 여호와의 전쟁과
법궤의 역할인 것이다.
문/.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세우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여호수아서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데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이 여호수아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것을 여러 분의 사역에 적용시켜 보시오.
3.여호수아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전쟁사상에 대해서 말하시오.
이스라엘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 이것을 폰 라드는 거룩한 전쟁이라고 하기도 했다(폰라드논문집,P119∼216)이에 관계되는 구절은 무수히
많다(수2:4,6:2,6:16,8:1,8:18,10:8,10:19,삿3:28,4:7,4:14,7:9,7:15,18:10,20:28,삼상14:12,17:46,23:4,24:5,26:8,왕상20:28).
위의 여호와의 전쟁에서 공통되는 요소는 “여호와가 ∼∼를 너희 손에 붙이셨다"라는 표현이다.
특히 여호수아 서에서는 여리성의 싸움에
앞서 5:12∼15을 보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전쟁은 여호와 대 그의 대적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수10:14등∼) 이러한 여호와의 싸움에서 이스라엘백성은“두려워 할 것이 아니고, 다만 믿기만 하여라"는 것이었다(수8:1등∼)
이
여호와의 전쟁은“싸움의 외침"으로 시작되었다(수6:5,삿7:20)
그리고 싸움의 중간에는“여호와의 공포"원수들 위에 임함을 기록하고
있다(신7:23,수10:11,24:7).
그리고 이 여호와의 싸움의 클라이막스는 병사들에게 전리품에 대한 금령을 내리는 것이다. 즉 이
전리품은 다만 여호와에게 돌리는 것이 마땅하였다(수6:18. 아간의 범죄)
그런데 이 여호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백성의 성결과 순종은 또한 필수적인 요소임을 발견할 수
있다(신6:18,20:16,신23:9∼14,수7:1,11,12,8:30∼35/성경구절 찾아 볼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순종의
공로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신 것은 아니다(신9:1∼6)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것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신9:5,6)
*그러면 여호와의 전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폰라드는 거룩한 전쟁을, 후대에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백성이 그들의 전쟁을 위해 신앙고백적 사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였다(걸프전,등).
또한 우리들은 우리의 육신적인 모든 일들에 대해서, 우리의 자의적인 원수(?)를 위해 대신 싸워주시고, 형통케
해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경전체의 흐름을 무시한 자의적 해석이다. 이 여호와의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우리는
여호와의 전쟁의 원형적인 형태를 창14장에서 미리 보았다) 즉 우리의 구원의 언약을 이루심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대적은 우리의 일반적인 원수라기 보다는 구원의 길을 방해하는 사탄적인 모든 요소로 봄이 타당하다(시편에 나타난 원수의
개념과 비교)
그리고 이것을 신약적인 의미로 본다면 성령의 역사를 예시해주기도 한다(요14) 보혜사 성령은 주께서 예비하신 처소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행위의 배후에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며, 또한 모든 공로와 상급을 그에게 돌려야겠다.
4.여리고에서의 싸움과 아인성의 싸움에 나타난 신학적 의미를 말하시오.
여호수아의 정복사업에서 여리고성과 아인성의 싸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8장에 보면 아이성 싸움 후에 율법의 저주와 축복을 선포한 산이 에발산과 그림심산 앞에서 있었는데,이 산들은 세겜 땅 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낭독했다는 것은 세겜을 정복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후대에 보면 세겜은 확실히 이스라엘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면 왜 세겜정복의 기록이 없는가?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이 본문들이 여호수아 후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말은 근거가 희박하다.
여호수아서에서 세겜사건을 침묵하는 이유는 여리고성의 싸움과 아이성의 싸움의 비교를 통하여, 여호와의 전쟁사상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이
두 전쟁에서 기술된 라합과 아간의 사건을 염두해 두고 있다. 여리고성 점령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전적인 순종이었고, 이방인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오는 사건이었다.
반면 아이성 점령사건은 아간의 불순종이 있었고, 그가 이스라엘인이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끊쳐 나가는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에 대한 단순한 기술을 한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서 선별적으로 기술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의 장래의 정복역사를 예시하는 기록의 의도가 있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이 정복전쟁의 전형이라고 했을 때 이 사건은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을 기억하라).
여리고 순종-라합이 대표적인 경우 축복
아이성 불순종-아간이 대표적인 경우 저주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말씀 순종여부에 따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끊쳐 나간다는 것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기서 라합이 순종했다는 것은 히브리서기자가 말했던 것처럼 믿음의 표현이었다.즉 라합은 이방인이자만
눈에 보이는 여리고성의 장대함과 동족을 의지하지 않았고, 정탐꾼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5.요단강도하와 홍해사건을 비교 설명하시오.
요단강과 홍해는 모두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홍해는 모세의
지팡이에 의해서 갈라졌고, 요단강은 법궤에 의해서 갈라졌다. 그리고 홍해사건 전에 유월절이 있었는데, 요단강도하 후에 유월절이
있다.
홍해의 사건은 출애굽의 사건을 완성이었다. 그러나 요단강도하는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시발이 되었다. 홍해사건은 애굽으로 부터의(OUT
OF)구원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홍해에서의 물 가운데서의 세례를 받음으로 그들은 모두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한 것이다(고전10) 이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단강사건은 더 적극적으로 약속의 땅으로 향한 구원(TO)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법궤를 통한
요단강의 갈라짐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어져 있는 가나안땅정복사역이 요단의 갈라짐과 같이 약속에 신실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약속의 땅은 단순한 부동산을 획득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6.약속의 땅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시오.
여호수아가 정복하려던 가나안땅은 어떤 땅인가? 그것은 정탐꾼들이 본 바 분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려던 땅이 단지 물질적인 의미에서의 부동산 획득을 설명해주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땅을 이해할 때, 가나안땅을 약속한 땅이라기 보다는, 약속을 보여 주는 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가나안땅-약속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예비한 땅)
히11장에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한다. 거기서 분명 아브라함은 그가 가야 할 가나안땅에
대한 지시를 분명히 받았다. 그런데 왜 히브리서기자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하였을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처음에 가나안땅에 갔을 때,
그 땅이 원래 약속하고 있던 바가 하늘의 본향인 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가나안땅의 의미를 알고, 거기서 장막생활을 하면서
그가 갈 본향을 바라본다.
그러면 가나안땅이 약속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안"에 대한 약속이다.
이 안식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또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안식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히3,4,11장)
7.기업분배에 나타난 의미에 대해서 말하시오.
각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한 것은 여호수아의 도면상의 정복의 사건을 실질적인
정복으로 이르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기업에서 여호와의 전쟁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파는 그들의 기업을
포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라진 듯하다(요계에도 없음)
8. 여호수아서가 신약에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히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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