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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심주제/구약의 중심주제

사사기와 룻기의 중심주제

by 금빛돌 2011. 4. 9.

1.사사기와 룻기의 중심주제는 무엇인가?

여호수아의 정복은 원칙적인 도면상의 정복이었고, 그 이후에 가나안 땅에는 구체적인 정복 사역이 필요했다(히4-여호수아는 참된 안식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여호수아 이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지도자를 세우지 아니 하셨다*2

그러면 누가 이 정복사역을 감당할 것인가? 이것이 사사기 초두의 관심이었다(1장).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사사였다. 사사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자로 각 지파를 위해 임시직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봉사는 온전치 못한 것이었다. 사사로 말미암은 일시적인 승리 뒤에 항상 실패와 모순들이 따랐다*3

이때 이스라엘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가나안 거민들과 타협하기 시작했다*4

이러한 원인으로서 사사기의 저자는“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5

그러면 그 왕은 누구를 가리키는가?그 왕은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왕은 일차적으로는 다윗 왕을 가리키나, 다윗왕은 참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이다.시110: ,내 주-예수그리스도)

룻기는 이러한 왕이 없는 암흑기에 있는 이스라엘가운데, 어떻게 왕이 출생하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8,9.

이 사사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왕(메시야)이 없는 이스라엘이 어떤 갖가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가? 를 담고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서도 그리스도가 참된 왕이 아닌 교회들의 모습이 어떠할 수밖에 없는가를 사사기와 비교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번호는 아래에서 설명함)

사사기

2. 여호수아 이후에 하나님께서 특정한 지도자를 세우지 아니하신 이유를 설명하시오.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특정한 인간지도자가 필요 없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사사시대의 통치 형태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형태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지는 구절은 기드온이 말한바“너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고 말한 부분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다(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

또한 두 번째 견해는, 신17:5∼ 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의한 통치형태는 처음부터 사사들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왕에 의한 통치라는 것이다.

전자의 견해에도 타당성이 있으나,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단지 사사기는 왕이 없는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사사들은 임시적이고, 방편적인 지도자들이었다.

3.사사기에 나오는“왕"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그들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더라"는 것이 사사기의 주제를 이룬다. 그러면 이 왕은 누구를 가리키는 가?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왕을 이방과 같은 왕이라고 생각했다(삼상8)
그러나 이것은 신17장에 나오는 하나님이 택하신 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택하신 왕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왕이었다. 그래서 사사기에 이어서 나오는 룻기 서에서는 다윗을 사사기에서 말하는 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가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결국 다윗도 온전한 왕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오히려 참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오히려 기다리는 인물이었다(시110)

4.사사들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사사들은 이스라엘의 전체의 항존적인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백성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여호와의 신이 임함으로 여호와의 전쟁에 앞장 섰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결코 그들 인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신의 도움이었다(이것을 통해서 여호와의 전쟁을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다).1그래서 사사들을 살피면 하나같이 인간적으로는 부족한 사람들이다(여자, 농부, 깡패,∼). 그들은 또한 한 전쟁이 끝나면 모두 자기의 자리로 돌아 가야하는 인물들이었다.
또한 사사기에서는 사사들의 업적뿐 아니라, 그들의 말년의 실패담들도 여지없이 드러낸다(바락-4:8, 기드온-8:27, 입다-11:30, 삼손-16). 이로서 사사들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라기 보다는 임시적인 치리자로서, 왕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5.사사시대의 가나안의 형편을 말하시오.

여호수아의 정복이 도면상의 정복이었으므로, 가나안땅에서의 이스라엘 백성 주위에는 여전히 가나안의 대적들이 있었다. 또한 이렇게 가나안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의 주위에 있는 것은 가나안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이기도 하였다(삿2:1∼3).
이러한 형편들 때문에 그들에게는 가나안문화와 종교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 이스라엘 주위에 그들을 위협하는 가나안문화와 종교의 형편은 어떠한가?

1)사회: 가나안족의 도시국가는 대부분 군주국가였다. 그래서 왕은 군대의 임명, 징집, 또는 토지를 강제로 징발해 다시 국민에게 봉사하는 대가로 빌려주는 식의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과다한 세금부과와 왕의 목적을 위하여 국민을 강제노동에 징발할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러한 이방의 왕권제도에 대해서 경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가나안사회는 상류층 귀족과 하류층 농노계급사이에 냉혹한 계급의식이 작용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약자보호법, 희년법등에 의해 이러한 가나안의 사회를 경계하셨다.
(성서대백과1권.42.)

2)종교: 이스라엘은 유목민족이었으나 이제는 정착, 농경민족이 되었다. 그래서 농사를 잘짖기 위해서는 가나안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농사의 신들로부터 혜택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백성의 구원과 관계된 언약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농사를 지을 때는 바알과 아스다롯신을 부르는 것이 더 현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 신들은 땅을 비옥하도록 돌봐주는 신들 이었다. 이러한 남신과 여신들의 성적인 결합은 풍년을 보장해준다고 믿었다. 바알은 날씨와 비를 주관하는 신이고, 아스다롯은 다산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성소의 예배의식이나 제단의 제사가운데서, 제사장들간의 거룩한 간음행위가 자행되었다(케데심과 케데쇼트).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절대로 금지되었다(신23:17 ∼18,반더발1권,P.369,370)

문/.여기서 이스라엘백성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바알을 섬기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
가?(참조, 약자보호법과 안식년, 희년법)

6.왕이 없는 사시시대의 형편과 이시대 교회의 형편들과 비교하시오.

1)그들은 가나안의 전쟁을 알지 못했다(2:1∼3)

A.즉 이스라엘 2세대인 여호수아서에 나타난 전쟁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다(영적전쟁). 그러나 사사기에 나타난 3세대의 이스라엘은 그들의 싸움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는 싸움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거민과 조약을 맺고, 또한 가나안의 제단을 헐지 않고 살아갔다(하나님은 이것을 금지하셨다).가나안인들과 조약을 맺었다는 것은 가나안과 정치적인 공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정복사업의 사업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또한 그들이 가나안의 제단을 헐지 않았다는 것은 종교적인 공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즉 가나안종교를 묵인하고, 혼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계속되는 대적의 위협이 있는 것은 당연하였다. 또 하나님은 여호와의 전쟁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대적을 허락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 임시적인 구원자인 사사들을 보내 주셨다. 그래서 사사들로 통하여 여호와의 전쟁이 시행이 됨으로 그들은 순간적인 안식을 누린다.그러나 또 그들은 반복되게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에게로 간다(이것이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역사였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어려움에 대한 절망감에서 하나님께 나온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란 징계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근본적으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B.이러한 것들을 한국의 기독교회와 비교하면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가?

한국의 기독교회들도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오, 우리의 대적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교회의 외적인 성장과 물질적 축복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신앙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큰 교회를 이루었느냐 또는 얼마나 큰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느냐에 있다. 또한 이점에 있어서 그 과정을 중요시하기 보다, 결과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갖가지의 이방문화와 샤마니즘적인 종교 행태가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주변에 갖가지의 이단들을 허용하시어 한국교회를 경성케 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는 이들의문제가 단순히 이단들만의 문제로 돌리고, 자신들의 세속적 혼합주의를 회개하지 아니하는 듯하다. 단지 회개란 어려울 때 눈물 흘리는 정도이고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없다.

-이것은 앞으로의 암울한 역사를 예고한다.

2)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삿17:6,18:1,19:1,21:25)

A.미가의 개인적인 성소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라는 사람이 에봇과 드리빔(집안에서 모시는 우상)을 갖춘 자기의 개인적인 성소를 세웠다. 미가는 레위인 소년을 고용하여 자기의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하였다(17:7下). 이러한 일들이 단 지파에서 온 정탐꾼에 발각되었다. 단 지파는 자기들의 영토가 너무 협소한 것을 알고(1:34) 그 기업을 확장시키려 하였다(18:1). 단 지파에 속한 몇사람들이 이거하는 도중에 미가의 집에서 소년제사장을 데려갔다. 그런데 그 소년제사장은 모세의 증손자임이 밝혀졌다(18:30). 단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성물(?)들도 함께 가져갔다. 이주 해 온 단지파 사람들이 가나안북방에 정착하여 그 소년제사장과 미가의“성물들"을 가지고 그들의 성읍에다 성소를 마련하고 단(Dan)이라 불렀다(18:30∼31). 이 불법적인 예배의 중심지는 오랫동안 번창하였다(왕상19:28∼29,반더발.P373∼374).

-가나안에서 자기의 기업을 포기한 단 지파는 이 사건이 후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요한계시록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사라진다.

문/.위에서 나타난 사람들의 잘못을 정리해 보시오.
祭儀의문제-
미가의 문제-
단지파의 문제-

B.레위사람이 첩을 둔 사건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내분

삿19∼2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도덕적 타락 및 가나안의 풍습에 젖어드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첩을 둔 어떤 에브라임 산지의 레위인에 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첩이 음행을 도망을 갔는데, 이 레위인이 자기의 직무를 잊어버리고 그 첩을 찾아 베들레헴을 갔다. 거기서 첩을 데리고 돌아오는 중에 베냐민 지파 기브아성의 한 노인의 집에 머무른다. 그날 밤에 그 성의 비류들이 제사장으로 남색하려한다. 그때 제사장이 그 첩을 성읍의 비류들에게 넘겨주니, 밤새도록 행음하여 그 첩은 죽고 만다.그런데 더 심각한 일들이 이제부터 벌어진다. 그 레위인은 자신의 죄를 생각지 않고, 그 베냐민지파 기브아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그첩의 시체를 12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보낸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미스바로 모여 베냐민을 치기로 결의한다(그들은 이것을 하나님백성의 총회라 불렀다,20:2).

-가나안 전쟁을 하지 않던 그들은 내부적으로 전쟁을 하게 되었다(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허용하셨다,20:28,35).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에게 대패하고 만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구원받은 공동체는 깨어지고 만다.

문/1.이들의 잘못을 정리해 보시오?
레위인(종교인)의 잘못-
베냐민거민-
이스라엘지파-

문/2.사사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없는가를 말해보시오?

룻기

7.나오미의 집안의 형편이 어떻게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예표적인 모습이 되는가?

나오미 집안의 어려움은 단순히 나오미 집안 개인의 형편만이 아니었다. 성경의 저자는 이것을 염두해 두고 기록한 듯하다(그렇다고 해서 폰라드가 말한 것처럼 허구의 이야기는 아니다). 본래 나오미의 집안은 본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나오미의 남편의 이름이 엘리멜랙인데, 그 뜻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이오, 나오미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이 본래의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이다. 그런데 그 나오미의 집안이 당한“마라"의 슬픔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다(이스라엘이 흉년이 든 사건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이다, 1:1). 나오미의 집안과 이스라엘은 완전한 절망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오미의 집안이 다시 가나안땅으로 들어 갔을 때가 이스라엘의 보리추수기였다(1:22, 그들이 간 곳이 예수님의 출생지였던 베들레헴이었다). 나오미의 집안이 이스라엘의 절기 중에서 풍요의 시작인 보리
추수기에 들어간 것은 이 룻기가 나오미의 집안의 회복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룻기는 사사시대의 절망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절망 중인 나오미의 집안과 이스라엘이 다윗의 가계로 말미암이 새로운 희망과 회복의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상징적 예표론이 아니라(폰라드)실제적 예표론이다(김성수교수)

8.사사시대사람들의 신앙과 사사시대에 속한 나오미의 신앙을 비교설명하시오.

룻기는 사사시대에 속한다(룻1:1) 사사시대의 형편을 룻기에서는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드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흉년이 들자 나오미의 집안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 모압지방으로 간다(이것이 사사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전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잘 먹고, 잘 사는데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사사시대와 나오미의 집안의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으로 간 나오미의 집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욕심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나오미의 집안에 큰 고통을 주시는 것이다. 즉 나오미의 집이 모압으로 들어 갈 때보다, 더 악하게 되었던 것이다(사사시대는 만사형통하지 않은 것이 축복이다). 이러한 사실을 나오미는 바로 파악을 하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깨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1:21) 그러나 일반적인 사사시대의 형편은 어떠했는가? 그들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종교나 산업은 자기들의 원하는데로 잘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만사 형통이 오히려 그들에게 대한 저주였다.

문/.나오미의 하나님이해와 우리들의 일반적인 하나님이해를 비교하시오? 이러한 나오미의
신앙에서 우리가 배울 바가 무엇인가?


9. 룻의 신앙에 대해서 논하시오.

룻이 나오미를 따라간 것은 단순히 그가 도덕적으로 현숙한 여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간 것은 룻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결과였다. 왜냐하면 나오미가 그의 자부들에게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네 동서가 그 백성과 그 神에게로 갔으니 너도 가려느냐(1:15)"

즉 나오미는 그의 자부들에게 신앙의 대상을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때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한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다. 신23:3절에 보면 모압 사람은 절대 이스라엘의 총회에 못 들어 오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혈통의 벽을 뛰어 넘어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이것은 라합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또한 이 룻은 고엘(구속자, 기업 이을자-보아스)를 만남으로 천국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다(룻4,마1)

-이 룻을 통해서 이방인인 韓國의 金氏들과 李氏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의 족보에 들어 가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기업 이를 자(고엘, 구속자)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문/.룻의 신앙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를 말하시오.룻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위해 포기한 것은 무엇인가?

10. 룻기에 나오는 시형제결혼법과 고엘사상에 대해서 말하시오?(신25:5-10).

창38장 媤형제결혼법에 대해서 잘 나와 있다. 유다의 장자가 죽게 되자 그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서, 차자를 죽은 장남의 며느리에게 들어 가게한다.그러면 그때 낳은 아이는 대가 끊긴 장자의 자손이 된다(그래서 차자인 오난이 그것을 싫어한다). 이것을 시형제 결혼법이라 한다. 그리고 대를 잇게 한 차자가 대가 끊긴 장자의 집안에 고엘(기업 이을자, 구속자)가 된다. 이것이 룻기에 그대로 나온다. 나오미의 집안에 대가 끊기게 되자, 자신의 친족 중에서 기업 이을 자를 찾았다. 그가 바로 보아스였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집안에 죽은 대를 이어준 고엘(구속자)였다.

-바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죽을 수 밖에 없는 대를, 천국의 족보에 연결시켜주는 고엘이다(창세기에서는 고엘로 말미암은 씨가 고엘의 자손이 되지 아니하였으나, 룻기에서는 고엘의 자손이 되었다. 이것은 창38장의 시형제 결혼법과 맞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구속사적 의도를 볼 수 있다. 즉 나오미의 집안의 죽은 족보가 고엘을 만남으로 다시 태어남과 동시에 고엘의 족보에 들어감으로 하나님나라의 족보에 들어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11.룻기에 나오는 구속史적 의의를 말하시오?(창38과 룻4장의 비교).

창37부터 야곱의 약전이 나오는데, 거기서 요셉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다가 갑자가 야곱의 4째 아들인 유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서 유다가 부지중에 자기의 며느리 다말로 말미암아 아이를 낳게되는데, 그가 바로 베레스라고 기록하고 있다(창38:29) 그런데 룻 4장에와서 다시 베레스의 이후의 가계가 나온다(룻4:18∼22). 이 베레스의 족보 가운데, 룻기의 중심사건인 룻이 보아스에게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은 사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룻기는 단순히 현숙한 여인 룻의 효성에 관한 이야기나, 단순한 나오미의 가정史에 촛점을 둘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혈통과 이스라엘의 절망을 극복하시며 그의 구속사를 이어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문/.마1:1∼6과 룻4:18∼22을 비교하시오. 마1장의 족보는 천국시민의 족보이다. 이 족보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는가?

“아브라함과 다윗의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창38:29,30),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수6:25)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룻4),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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