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교회에서 청대학부 수련회를 했습니다. 개인성경공부 훈련을 하는 가운데,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적용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것은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많은 성도님들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한치 앞도 내도 볼 수 없는 불안한 미래 때문에 두려움가운데 사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조건 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 없으면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높은 곳에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또 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칼에 손을 베일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한 선물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또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 21절과 2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던 두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이스라엘백성들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광야의 생활도 힘이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미래에 들어갈 가나안땅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지게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1)두려움은 축복의 선물을 저주의 선물로 보게 했습니다(27).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미래에 주실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가나안)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축복의 땅인 가나안땅을 그들을 멸하는 저주의 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미래가 축복의 미래가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힘든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절대 운명적으로 미리 정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는 그들의 미래가 한가지로 운명되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미래를 알기 위해서 점집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라는 운명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 인생의 미래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상태에 달려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의 미래가 그들을 멸망 받는 미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은 대로 광야에서 모두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땅에서의 그들의 미래가 축복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미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두려움을 잘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운 미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반드시 극복해야합니다.
2)또 두려움은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21).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읽지 말 것)
21절 하반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여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 것도 못하게 하여 한 걸음도 진진하지 못하게 합니다.
3)또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조차 의심하게 했습니다(27).
2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가나안)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그런데 호세아 11장 1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여”라는 말은 “가슴이 뛸 정도로 사랑하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은 그들을 가슴이 뛸 정도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심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십니까? 또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믿으십니까?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왜 나를 구원하셨습니까? 왜 빨리 나를 데려가시지 않고 살려두십니까? 정말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것 맞습니까? 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가슴이 뛸 정도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실 때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한다” 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도 내려오는 그 사랑의 햇빛을 더 풍성하게 받아 누리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두려움이라고 하는 검은 우산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가슴 뛰는 뜨거운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반드시 극복해야합니다.
4)또 두려움은 모든 의욕을 상실시켰습니다(28a).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28절 상반 절을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어디로 가랴” 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말성경에서는 “28. 우리가 왜 그 곳으로 가야 한단 말이냐? 무모한 일이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가나안땅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또 28절 중반 절을 보면 “낙심하게 하여”라고 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마음이 녹아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녹고 가나안에 들어갈 모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5)두려움은 사실보다 문제를 더 커 보이게 했습니다(28).
28절 하반절을 보면“28---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가나안의 사람들이 이스라엘백성들보다 더 장대한 것도 사실입니다. 또 거기에 키가 큰 아낙자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과 비교했을 때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또 가나안의 성곽들이 크고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하늘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두려움 때문에 사실보다 문제를 더 커 보이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사실보다 문제를 더 커보이게 합니다.
6)결국 두려움은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광야로 돌아가는 형벌을 받게 했습니다(35).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악한 세대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기로 한 좋은 땅, 축복의 땅을 단 한 사람도 볼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두려움으로 다시 38년간의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고생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그 뒤에 영광이 있지만, 고생은 아무리 해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앞으로 가도 고난이고, 가만히 있어도 고난이고, 또 뒤를 물러서도 고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은 앞으로 가도 두려움이 있고, 가만히 있어도 두려움이 있고, 물러서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무서워 뒤로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렵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앞으로 진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미래에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미래의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미래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1)첫째는 두려움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합니다(딤후1:7).
사람들은 두려움을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로만 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담력훈련을 하고, 극기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두려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두려움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오는 구절이 창세기 3장10절입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란 단순한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이란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1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이란 “퓨뉴마” 즉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말성경에서는 “딤후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영)은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해서 아무리 “두려워하지 말라,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가져라”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영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님은 모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영이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만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랑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사랑만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만 두려운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 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 충만할 때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두려움을 다 물리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말하면 사탄은 누구입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고 불안한 마음을 줍니다. 또 사탄은 끊임없이 “너는 할 수 없어 현실을 봐 그것은 무모한 일이야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그것은 거짓말이야” 라고 하는 불신앙의 마음을 줍니다. 또 사탄은 끊임없는 미움과 다툼의 마음을 줍니다. 또 사탄은 절제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두려움의 포로가 되게 합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성령 충만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도 성령 충만을 받지 않았을 때 계집종이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령 충만을 받고 난 다음에는 삼천명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가운데 있는 모든 두려움들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30-33).
30절에서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신1: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믿어야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까지 우리를 안으사 이곳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미래의 인생길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미리 싸워 주십니다.
또 33절에 보면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갈 미래의 길을 먼저 가셔서 우리가 거할 장막을 칠 곳을 찾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우리의 갈 길을 지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아들처럼 안으시고 품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미래의 인생길에 여러분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대적인 사탄을 물리쳐주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앞길에 우리가 거할 장막을 미리 쳐 놓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앞길을 말씀을 통해서 지시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절에 보시면 “20--우리에게 주신(주실) 아모리(가나안) 족속의 산지에--”라는 말에서 “주신”은 미래형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실 가나안땅은 미래에 반드시 “주실” 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21절에 보면 “21--이 땅(가나안)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주셨은즉)--”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두셨다”는 동사와 20절에 “주신”이라는 동사가 같은 동사입니다. 그런데 21절에서 “주셨은즉”이라는 동사는 완료형으로 “이미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미래에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지금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이미 복을 주신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더 이상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래서 나의 미래는 정말 아무 대책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렘33장 1절-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 대신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그 일을 만들어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 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일함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느4:14).
느4장 14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우리에게 제일 크게 노리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어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제일 큰 전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도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님을 기억함으로 우리의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해서 싸워야합니다.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 모든 미래에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현재 내게 맡기신 일들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게 맡기신 교육과 전도와 선교와 구제의 일을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해서 가만히 있지 마시고, 가정과 아내를 위해서 수십군데라도 원서를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오정세라는 영화배우가 있습니다. 그는 배우지만 무대공포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 사회를 보는 데 떨어서 결혼식을 망쳤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을 했습니다. 영화배우가 꿈이라 영화 오디션을 100번이나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군데 합격을 해서 조연배우로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주연배우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은 “두려움은 나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그는 떨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두려움을 통해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미래의 우리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심으로 미래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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