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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죽음에 이르는 죄⑤탐심을 이기를 길(눅12:13-21)

by 금빛돌 2013. 1. 13.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지난해 127~10일 수도권 거주 초··고교생 각 2000명을 대상으로 윤리의식 설문조사한 결과를 7일 발표했습니다.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지어서 1년간 감옥을 가는 것도 괜찬다고 응답한 비율이 고등학생의 경우 44%에 달했습니다. 중학생은 28%였고, 초등학생도 12%나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겠습니까? 자라나는 학생들은 기성세대의 거울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자나라는 학생들의 문제는 기성세대들의 문제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물질만능주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로 그 사람의 존재를 평가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물질에 대한 욕심-즉 탐심을 이기는 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는 탐심에 대해서 많은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숭배라고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엡55절에는 물질을 탐하는 자는 곧 우상숭배자인데, 그런 자들은 하나님나라에서 기업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디모데 전서 619절에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7절에서는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강물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물질에 대한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바다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라는 말을 요즘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말로 행복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참된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을 단순히 물질의 부요함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 인생의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부자는 그 소유가 넉넉해도 그것으로 인생의 참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또 반대로 가난한 자는 물질이 없기에 그것 때문에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탐심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가운데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목사님 이 말씀은 부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욕심보다는 물질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탐심에 관한 말씀은 가난한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고 말씀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탐심을 물리치라는 말씀은 부자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라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관습은 형이 동생보다 아버지의 유산을 두 배다 더 가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9천만원의 유산을 남긴다면 형은 6천만원을 유산으로 받고, 동생은 3천 만원의 유산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형이 욕심이 많아서 동생에게 돌아갈 유산도 다 가로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동생이 억울해서 예수님에게 내 형에게 명령하여서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보지 않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네 형이 욕심이 많구나 네 형을 내게로 데리로 오라 그러면 내가 재판장이 되어서 네 형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라고 하겠다라고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동생도 이런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14절입니다.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유산)을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동생에게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예수님은 형인 부자의 횡포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눈을 감는 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20절에서 부자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시고, 그 영혼을 데리고 가시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나를 물질을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말씀하십니까? 것은 부자인 형만 아니라 가난한 자인 동생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동생에게 돌아갈 유산을 가로챈 형에게도 탐심의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 제일 관심을 가지는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우리나라가 정치 민주화는 되었는데 경제 민주화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심각한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입니다. 일부 대기업만 잘되고 중소기업을 너무나 심각한 위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에게만 편중이 된 부가 서민에게까지 공평하게 분배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여나 야나 방법은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인 방향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만일 예수님이라면 이런 부의 불균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것에 대해서는 마가복음 10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부자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가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에게 그 물질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도 탐심의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를 바라보면서 나도 저 부자와 같이 많은 물질을 가져야지만 행복해지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난한 자의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부자인 형은 동생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동생도 자기 형처럼 자신이 물질을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탐심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부자의 경우는 많은 부를 축척해 놓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약자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끊임없이 더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부자의 탐심입니다.

/가난자의 경우는 나도 저 부자처럼 물질만을 가지면 인생이 참으로 행복이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의 탐심입니다.

그래서 탐심을 삼가라는 이 말씀을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탐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1)탐심의 문제는 오직 물질로 인생의 행복을 찾으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물질과 행복이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어떤 할머니가 손자를 홀로 키우시다가 물질이 없어서 생활고로 자살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물질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도 기도할 때 너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소유가 행복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이 있어야 기본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신 분들은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탐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탐심의 문제는 행복을 오직 물질에서만 찾으려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복이 있다 없다 하는 기준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의 양으로만 보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무조건 복이 있고, 가난한 자는 무조건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더라도 무조건 돈만 많이 있으면 복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도 무조건 부자가 되면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의 복이 단순히 그 사람의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부정하게 살아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정직하게 살아서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 더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가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젊었을 때 잘못된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단순히 그분이 물질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물질이 조금 부족해도 남에게 베푸는데 있어서는 빠지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분보다 더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탐심의 문제는 행복, 또는 복을 단순히 물질의 양으로 평가하려는데 있습니다.

2)또 탐심의 문제는 철저한 이기심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제일 많이 한 말은 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나라는 말을 여섯 번씩이나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이 부자를 자기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 지금 60억의 인구 가운데 그 약 10분 의 16억 정도가 매일 밤에 채워지지 못한 배를 붙들고 잠자리에 든 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세상에는 날마다 약 4만명 정도가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는 100명 정도의 아기 가운데 40명 정도는 영양실조로 회복 불가능의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안고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매년 십만명에 달하는 어린 아이들이 비타민A의 결핍으로 장님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탐심의 문제는 자기만을 생각하며 이웃의 배고픔에 대해서 눈을 감는 것입니다.

3)또 탐심의 문제는 물질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놓으려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19절에 보면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는 물질에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누리려 했습니다. 원래 우리 영혼의 참된 안식과 평안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그 하나님의 자리에 물질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탐심은 물질의 풍성함에서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누리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탐심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탐심의 결과는 모두를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남태평양에 가면 돌로 만든 거대한 석상만 가득한 무인도가 있습니다. 원래 그 섬은 자원이 풍부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사람들은 부의 상징으로 석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석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 곳의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섬의 제한된 자원에서 더 큰 석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것을 빼앗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진 자는 가난 한자의 것을 빼앗아가며 좀 더 큰 석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모든 자원이 고갈이 되어 부자나 가난한자가 모두 함께 멸망하고 거대한 석상들만 남은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자들의 물질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끊임없는 욕망은 결국 그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멀어지게 만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부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물질)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나 하십니다. 부자도 죽으면 그 쌓아두었던 물질을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부자들의 탐심의 결과입니다. 가난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지 못한 것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으로 늘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이 탐심의 죄를 이겨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탐심의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1)진정한 부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단순히 돈만 많으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부족해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돈이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은혜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돈은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영적인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돈을 쌓아놓지 않아도 천국에 상급으로 쌓아놓는 천국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질이 부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르고 풍족한 말씀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올해부터 성경암송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암송하심으로 말씀의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6:13 나는 (고난으로 인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하나님으로) 항상 기뻐하고 (육신적으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고 (육신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육신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은혜의 부자, 영적인 부자, 천국의 부자, 말씀의 부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진정한 부자는 물질의 정도가 아니라 만족의 정도입니다.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에게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최고의 부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가진 물질로 만족하십니까? 하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오 조그만 더 있으면 됩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당대 최고의 부자였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4:11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만족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록펠러와 사도바울 중에서 누가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부자는 물질의 정도가 아니라 만족의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비록 가난하게 보여도 내게 주신 물질로 만족하며 감사한다면 만족한 만큼 부자입니다.

/다윗은 시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시리로다고 고백했습니다. 23편을 쓸 당시의 다윗은 왕궁에 나와서 압살롬에서 쫓길 때입니다. 지금 그에게는 화려한 왕궁도 없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그에게는 먹을 것도 풍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모든 것을 다 가졌기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부족해도 그의 삶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참된 만족이 되니까 모든 것에 다 만족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테레사수녀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서 굉장한 부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그 부자가 테레사 수녀에게 당신이 뭐가 제일 필요하십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테레사 수녀는 저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합니다." 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진정한 부자는 축적의 정도가 아니라 나눔의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만을 위해서 물질을 쌓아놓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참된 부자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부자는 그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물질을 얼마나 나누었느냐 로 평가해야합니다.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종종 가난한 어떤 할머니가 자신의 전 재산을 다 기부했다는 광고를 봅니다. 우리가 볼 때 그 분들은 가난하게 사시면서 그 분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은 분들입니다. 우리가 볼 때 그분들은 가난한 분들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돈을 쌓아놓기만 하는 부자보다 더 진정한 부자입니다.

4)진정한 부자는 인격의 부자입니다

벧후3:11에서 이 모든 것(이 땅의 물질)이 이렇게 풀어지리니(불타서 없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에는 이 땅에 모든 물질이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가진 물질을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가게 되면 절대 우리가 가진 물질의 양으로 주님은 우리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물질을 가졌건 우리의 인격의 정도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내가 비록 이 땅에서는 물질로 가난하게 살았더라도 더 온유하고, 겸손하고, 더 너그러운 삶을 살았다면 우리 주님은 그런 자를 더 크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나이가 들수록 단순히 돈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격을 더 많이 쌓게 하소서, 나이가 들수록 분노의 죄를 더 잘 다스릴 줄 알게 하시고, 시기와 질투가 더 없어지게 하시고, 영적인 게으름이 더 없어지게 하시고, 더 겸손하게 하시고, 더 온유하게 하시고,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노후대책입니다.

오늘 구역모임하실 때 “1.당신은 가진 물질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2.당신은는 진정한 부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에 대해서 나눔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인격의 부자, 영적인 부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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