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행1장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오늘 본문에서는 오직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 초대교회는 절망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요21장에 보면 제자들은 고기 잡는 어부로 다시 갈릴리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특히 부활을 모두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고, 손으로 직접 확인해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다시 갈릴리로 갔습니까? 그 이유는 사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려고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고는 우리도 다시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초대교회는 지금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없습니다. 이것도 초대교회의 절망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승천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계실 때처럼 누가 그들과 함께 해주겠습니까? 누가 그들을 변호해 주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초대교회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는 깊은 절망과 깊은 무능과 또 깊은 좌절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제 이 땅의 그 어떤 인간적인 것으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에 대한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왜냐하면 내가 가면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 줄것이기 때문이다--내가 떠나는 것은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 주기위해서이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하면 이 땅에서 내가 너희를 도와준 것처럼 성령이 너희를 도와줄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이 너희에게 임할 때 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라—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비로소 너희가 모든 것을 할수 잇으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던 초대교회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많은 성경의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신앙생활의 오랜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성령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 것이 없어도 오직 성령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같이 초대교회의 유일한 희망은 성령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성령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모든 절망을 이기고 희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기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첫째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을 체험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찰리 신이라는 사람의 간증을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찰리 신은 재미교포로 미국의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 찰리스 치즈스테이크(Charleys Cheesesteaks)와 비비밥 아시안 그릴(BIBIBOP Asian Grill) 등을 세운 인물입니다.
찰리 신은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의 이혼과 가난을 겪었고, 13세 때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습니다. 어머니는 병원 청소와 식당 일을 하며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며 “반드시 성공하고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7살 때 기도를 하다가 성령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내가 돈을 벌면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후에 그의 전 재산을 모두 선교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자녀들에게는 유산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은모두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첫째는 예수를 구원의 주님으로 믿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살 때 하나님을 체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을 체험시켜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성령 하나님을 벌꿀에 비유를 했습니다.
여기 꽃이 있습니다. 그 꽃 속에 꿀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그 꿀의 맛을 설명해보겠습니다. 이 꿀은 달콤합니다. 맛이 있습니다. 영양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여러분들은 지식으로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그 말이 체험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꿀맛을 알 수 있습니까? 벌이 꽃에서 꿀을 먹고 우리에게 날라다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벌을 통해서 비로소 꽃의 꿀을 체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해도 성령이 아니면 그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해도 성령이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2000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돌아가신 것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내가 죄인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병 고치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시고 체험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평생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 자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롬5장 5절에 “롬5:5하--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는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십자가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가운데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십자가만 생각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느낍니다.
어떤 대학교수님은 형님 목사님을 통해서 10년 동안 성경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경 공부를 해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형님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던 모든 말씀이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가 죄인인 것을 알고 울다가 부끄러워서 버스에서 내려서 실컫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자녀가 교회를 다니는데 아직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또 여러분 가운데서 교회를 수 십년 다녀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성령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둘째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된다고 합니다.
증인은 목격자 혹은 순교자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살아계신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자주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복음을 위해서 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증인이 무엇입니까? 증인은 목격자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이론적으로만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체험하는 증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도 아깝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증인이란 복음을 입으로 전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손가락이 있습니다. 손가락은 저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야 합니까?
이 손가락입니까? 아니면 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입니까?
이 손가락이 아닙니다. 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방언을 하느냐,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느냐 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방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오순절에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다른 나라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각자 자기의 언어로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중요합니다.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언이 있었습니다.
병 고침도 마찬가지입니다. 행 2장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목적도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령 하나님보다 성령 하나님이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절대 자신을 드러내는 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성령은 나를 증거하고 아버지를 증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은 무엇을 증거하게 합니까? 성령하나님은 성령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단순히 방언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복음을 입으로 담대하게 증거하게 하십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신 것과 주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주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온 세상의 주와 내 삶의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았던 베드로가 어떻게 설교합니까?
행2장 36절에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세상과 나의 주)와 그리스도(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방언과 병고침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성령 충만함으로 오직 예수님만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분인 것을 입으로 담대히 전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을 입으로만 증거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예수님의 삶으로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도행전에서 무엇이 진정한 성령충만입니까?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여 하루에 예수님을 믿게 한 것만 아니라 스테반이 성령 충만함으로 돌아 날아와 죽는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같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래서 여러분 무엇이 성령 충만입니까? 성령 충만은 예수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우리의 삶가운데 오직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성령 충만을 사모하십니까?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손을 대면 병을 낫는 능력을 행하기 위합니까? 아니면 유창한 방언을 하기 위함입니까? 성령충만을 절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도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기 위합니다. 심지어 스테반과 같이 내게 돌이 날라와도 오 주님 저들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합니다 라고 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으로 입으로만 아니라 나의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왜 오직 성령인가? 성령만이 벽을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성령하나님은 벽을 넘게 하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즘에는 옛날에 비해서 지리적인 벽이 높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리적인 벽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초대교회 당시는 지리적인 벽이 더 높았습니다. 지리적인 벽이란 실재 벽이라기 보다는 지역사이의 벽을 말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사이의 벽이 있습니다. 또 사마리아와 땅 끝 사이의 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대의 벽을 넘어서 사마리아까지 그리고 벽을 넘어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벽을 넘는다는 것이 절대 인간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있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복음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고 유무상통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박해도 있었지만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까?
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고 합니다.
스테반은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인해서 사도 외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의 박해가 아니었으면 복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런데순교를 인한 큰 박해 때문에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후반부에 나오는 사도바울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땅 끝을 행해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바울에게 말합니다. 여기가 안정이 되었으니 더 이상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땅 끝을 향해서 나갑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땅 끝은 어디이겠습니까? 단순히 지역이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의 땅 끝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곳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의 마지막 산인 이슬람권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분은 오늘날의 땅 끝은 다시 예루살렘이라도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백투 예루살렘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의 땅 끝은 단순히 지리적인 벽이 아닙니다. 지금 지리적으로 보면 이제 복음은 모든 곳에 다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땅 끝은 바로 우리 옆에 우리가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철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의 땅 끝이란 우리 옆에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땅 끝을 돌다보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땅 끝은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합니다.
내 옆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땅 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자고 했을 때 지리적으로 땅 끝이 아니라 내 이웃이 바로 땅 끝입니다. 우리가 만일 나의 진정한 땅 끝인 내 이웃에게 진정한 증인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 진정한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내가 넘지 못하는 벽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믿지 않는 남편일 수 있습니다. 또 믿지 않는 자녀일 수 있고, 가족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오늘도 벽을 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을 주셔서라도 이 벽을 넘게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저 중동에 있는 선교사님에게 선교헌금을 하는 것은 쉽지만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의 벽을 넘는 것이 더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령하나님은 벽을 넘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벽을 넘게 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합니다. 또한 성령하나님만 사람의 벽을 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넘어야할 사람의 벽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가 가야할 땅 끝은 어디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하나님이 우리가 넘어야 벽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도 내가 성령을 따라서 벽을 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그 사람의 벽을 넘어서 나의 땅 끝인 그 사람에게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령하나님을 따라서 벽을 넘는 진정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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