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아브라함만 아니라 이삭도 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이삭의 믿음도 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만 아니라 이삭의 믿음도 정말 대단합니다.
지금 이삭의 나아가 20, 30살즘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는 순순히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제단에 눕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한마디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이 말로 가르친 믿음이겠습니까?
성경공부를 하여 가르친 믿음이겠습니까?
설교를 하여 가르친 믿음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온전히 삶으로 보여준 믿음입니다. 몸으로 보여준 믿음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그리고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가장 크게 고민이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로 되겠습니까? 가르침만으로 되겠습니까?
부모가 삶으로 보어주아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아브라함이 삶으로 보여준 신앙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삭이 물려받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서 부모의 신앙이 아들에게 내려갈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삶으로 보여준 신앙을 한마디로 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내려놓음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신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도 하나님께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해서 진정한 내려놓음이 무엇인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아들 이삭이 어떻게 본받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먼저 아브라함의 신앙은 나를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2절에 보면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고 합니다.
여기서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제물을 죽여서 모든 것을 불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제로 드릴 때 제물 위에 안수를 하고 드립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그 제물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번제의 제물을 죽일 때 자신을 완전히 죽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번제를 드리라는 말은 아브라함 자신을 하나님 앞에 완전히 죽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삶을 내려놓는 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번제의 제물과 같이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합니까?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내 삶이 편하고 더 큰 안식과 평강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합니까?
내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어렵고도, 또 쉬운 일입니다.
어렵다는 말은 내가 나 자신을 나의 힘으로 죽이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 쉽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도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는데, 어떤 믿음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네 자신을 죽일 수 있느냐의 시험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네가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느냐의 시험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 앞에서 아들에게 어떤 신앙의 보여주었습니까?
“아들아 내가 너를 제물로 바칠 때 내가 네 머리위에 안수하였다. 그것은 내가 너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들이 내가 너를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드리는 것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이다” 는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인 이삭도 어떻게 했습니까?
내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 하나님께 드리나 나도 아버지와 같이 나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이려 해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가 그와 함께 죽었음을 믿으십니까?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는다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죽이고 부인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은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자녀들도 우리를 본받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은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그리스도와함께 죽고 그 안에 예수님만 살아있는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아브라함의 신앙은 나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 이삭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이스마엘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이삭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은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앙적인 차원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너무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또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귀한 존재였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나 되어 얻은 아들입니다. 이삭은 첩을 통해 나은 자식이 아니라 본 부인을 통해서 낳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귀한 아들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삭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지금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보다 더 귀한 아들이고, 자신보다 더 귀한 아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하나님 앞에 독자 이삭을 드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 자신을 드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자녀를 낳아본 부모의 입장에 서 본다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더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내려놓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나 자신만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나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하나님께 다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런 모습을 통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이 이삭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겠습니까?
아들아 정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죽어서라도 너를 살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
너는 내 생명보다 귀한 아들이다. 그런데 아들아 아무리 내가 너를 사랑해도 하나님보다 너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들아 이 말이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단다. 만일 내가 너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네가 나의 우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너를 망하게 할 것이다. 아들아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너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들아 나는 너를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인 이삭이 어떻게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았습니까?
이삭이 나아가 40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종이 신부감을 데리고 오고 있었습니까?
이때 이삭이 자신의 신부감만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있습니까?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귀한 신부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부감을 기다리다가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신부감을 데리고 왔다고 하니까 이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부인 리브가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보여줄 신앙이 무엇입니까?
나의 가장 귀한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그 세상의 가장 귀한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신앙을 보여주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신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는 말은 결코 아브라함이 자신의 삶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가장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들을 믿고 내려놓았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내려놓는다는 말은 단순히 불교에서 말하는 식으로 비운다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17-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중략)-- 19.그가(아브라함)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믿는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이런 부활신앙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삭의 출생과정에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일 중요하다).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왜 우리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발소에 가면 이발사가 칼을 가지고 면도를 합니다. 내 목에 칼을 댑니다. 칼날이 잘 서지 않으면 다시 칼을 갈아서 내 목에 댑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이발사가 내 목을 자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것을 다 믿고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면도할 때 잡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이발사보다 못 믿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돈 문제를 내 앞에 다 내려놓아라-너의 자존심 문제를 다 내려놓아라"
그런데 절대 내려놓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의 미래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결혼문제 자존심문제, 자녀문제를 다 내 앞에 내려놓아라--그런데 절대 내려놓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완전히 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 앞에 다 내 앞에 내려놓아라-그런데 내려놓지 않습니다-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교회 주되신 것과 그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선하게 이루실 줄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원로장로-십자가 가슴에 대고 말하라).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아브라함과 이삭)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절대 혼자 돌아오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드리지만 이삭과 함께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제일 아플 때입니다. 사실 번제할 양은 이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그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창17장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도무지 인간적인 힘으로 이룰 수 없고,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조차도 능히 이루실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도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갈3장 9절입니다.
“갈3:9.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같이) 복을 받느니라”
우리는 물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내어 드려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반드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내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을 때—우리는 비로소---준비해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손해 볼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체험이 중요합니다. 맛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런 체험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의 자아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너의 자존심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너의 생명조차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너의 가장 귀한 그 모든 것조차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명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는다 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죽이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의 가장 귀한 생명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았을 때 우리를 다시 살려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것조차도 주님께 다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다 내려놓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믿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가정에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적 신학 > 설교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과의 친밀감(수23:7-11) (0) | 2026.05.16 |
|---|---|
| 쓴 물에서 희망의 샘으로(출15:22-27) (0) | 2026.05.16 |
| 쉴 때가 쉴 때가 아닙니다(수23:1-8) (0) | 2026.05.09 |
|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가? (삼하4:5-12) (1) | 2026.05.08 |
| 복음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빌1:12-26) (0) | 2026.04.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