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모압으로 갑니다. 왜 모압으로 가겠습니까? 여러분 룻이 어느 지방 사람입니까? 모압 지방 사람입니다. 마1장 족보에 보면 “마1:5하—보아스는 (모압 여인)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압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 룻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그 모압 지방에 부모를 맡기기 위해서 모압지방으로 갔습니다.
삼상22: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런데 5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갓을 보내셔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여러분 이 요새가 어떤 곳입니까? 모압의 산성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추격을 피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인간적으로 다윗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요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를 지켜준다는 인간 요새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다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땅에 어떤 곳입니까?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땅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 요새를 떠나 그를 죽이려는 유다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 친히 다윗의 요새가 되시기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건져주신 후에 어떻게 시를 적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시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먼저 하나님은 다윗의 반석이 되어주셨습니다.
사울의 무리가 다윗을 죽이려고 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 앞에 피할 반석을 보여주십니다. 그때 다윗은 반석에 몸을 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피하여 안전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요새도 반석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요새가 되어주셔서 원수들의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의 바위가 되어주셨습니다.
반석은 몸을 숨길만한 작은 바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위란 큰 산을 의미합니다. 유대나라에서 큰 산이란 사막과 대조를 이루는 말입니다. 사막이란 큰 산처럼 보이지만 금방 있다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큰 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위에 사막들이 있다가 없어지지만 큰 산은 불변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큰 산이 되어주셨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다윗주위에 마치 모래산처럼 있다가 사라졌다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큰 산과 같은 영원토록 다윗과 함께 해주셔서 다윗의 피할 큰 산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와 같이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며 신앙생활을 같이 했다가도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우리의 변치 않는 큰 산이 되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렴없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변치 않는 우리의 큰 산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의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전쟁에서 화살이 날라 옵니다. 그때 모든 방패가 화살을 다 막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방패를 빗겨간 화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방패가 되어주셔서 다윗이 화살의 위협 가운데서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화살이 눈에 보이는 화살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쏘는 말의 화살이 있습니다. 또 사탄이 쏘는 불화살도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탄의 불화살들이 이 날라 옵니다. “너는 낙심해라,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해라, 말씀에서 떠나라, 너도 인간적인 방법대로 살아라”.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영혼을 죽이려고 불화살을 쏩니다. 그때 하나님만이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셔서 모든 불신앙적인 화살들을 막아주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언제든지 불신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여전히 믿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의 구원의 뿔이 되어주셨습니다.
법궤의 모퉁이에 뿔이 있습니다. 이 뿔은 법궤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이 뿔을 잡고 있으면 어떤 사람도 그를 죽이지 못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뿔이신 하나님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는 모든 대적의 손에서 구원해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뿔이 되십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의 산성이 되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산성이란 적이 침입을 했을 때 최후의 방어선이 되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 유일하게 남아서 우리를 지켜주는 산성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에 실패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우리의 최후의 방어선이신 하나님만은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우리 삶의 최후 방어선이신(산성이신)하나님만 붙들고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표현할 때 모두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산성이시라고 하면서 다윗은 나의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말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직접 체험한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 반석이시고 요새이시고 방패시고 산성이시라고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진열장 속에 있는 보석과 같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이고 값어치 잇는 보석이라도 진열장속에 있으면 그것은 내게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내가 체험한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나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경험대로 전쟁에서 체험한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다윗보다 더 큰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나의 힘이 되시는 나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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