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님이 은퇴 설교를 앞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그 주 금요일에 교계의 원로 목사님께서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은퇴 예배보다 그 목사님 장례 예배가 더 우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목회를 은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목회 은퇴보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중요하구나, 은퇴는 마지막이 아니라 마지막을 위한 준비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시작도 중요합니다. 또 인생의 중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끝에 우리는 모두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만나보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 인생의 끝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볼 때 여러분들은 어떤 인생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이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복이 없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나무와 같은 인생이 있고 겨와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겨와 같은 인생은 바람이 부는 대로 날라 갑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바람이 불면 두려워합니다. 염려의 바람이 불면 근심합니다. 역경의 바람이 불면 주저 않습니다. 낙심의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이 겨와 같은 인생이 되지 말고, 시냇가에 심은 나와 같은 복 있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밟니다.
그러면 물기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사람입니까? 힘이 들 때 여러분에게 찾아오면 편안한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입니까?
예레미야서를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이 나오고,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렘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가시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은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육신으로 힘을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또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시나무와 같이 사람들에게 상처만을 줍니다.
그런데 “렘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합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은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의지합니다. 이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뿌리가 강변에 있기에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뜨거운 태양이 비춰도 그 잎에 청청합니다. 가무는 해에도 잎이 무성하고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은 사람들에 쉼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만 가면 내 삶에 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피곤하여 지친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은 인생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나무를 보시기 바랍니다. 멀리서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뿌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냇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무수한 바람 앞에 인생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사람입니다.
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 흔들리지만 인생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사람입니까? 그 이유는 인생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고 합니다. 요셉은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고 합니다. 요셉의 인생에도 수많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구덩이에도 빠졌습니다. 억울한 모함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감옥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샘 곁의 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도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더 뿌리를 깊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바람이 불어도 인생의 뿌리를 하나님께 더 깊이 내릴 수 있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습니까?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앓음다움에서 나왔습니다. 앓음에서 아름이 나왔습니다.
소나무에서 가지가 잘리면 그 곳에 상처가 생깁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송진이 나옵니다. 송진이 나와서 아물게 된 것이 소나무 옹이입니다. 그래서 소나무 분재를 하는 사람들은 옹이가 있는 소나무를 제일 값어치 있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옹이가 있는 소나무가 제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또 옹이가 있는 나무가 더 단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옹이가 있는 나무를 버팀목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옻은 옻나무의 피고름입니다. 그런데 옻의 피고름이 옻의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은 인생의 아픔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앎음이 고통이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생의 앓음이 아름다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상처가 아름다운 흔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상처가 여러분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 인생의 앓음이 아름다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더 아름다운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인생이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한해부터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듯이 성경을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야로 말씀 묵상하는 사람은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합니다.
왜 말씀을 밤낮으로 즐거워합니까? 단순한 지적인 호기심 때문이 아닙니다, 말씀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 말씀을 즐거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밤낮으로 그 말씀을 묵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연애편지를 읽듯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연애편지가 없지만 옛날에는 연애편지를 썼습니다. 연애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합니까? 절대 글자를 먼저 읽지 않습니다. 그 편지를 읽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먼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글자보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래서 밤낮 그 편지를 마음에 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어떤 사람이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은밀하게 숨겨놓은 애인처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또 이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펼치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 마음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축구경기를 보고 즐기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즐기십니까?
여러분들은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즐기고 있습니까?
스펄전이 말하듯이 마치 죄인이 심문을 받는 장소에 가듯이 교회에 가고 있지 않습니까?
왜 교회 가는 것이 부담이 됩니까? 왜 성경을 보는 것이 부담이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즐거움보다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말씀으로 채우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낮과 밤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야란 인생의 낮과 인생의 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인생의 어두운 밤에 내게 있는 문제들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묵상합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들을 보면 다윗이 어떻게 인생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을 묵상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3편에 보시면 시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이로 인해서 다윗은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무엇을 밤낮으로 묵상합니까? 시3:3.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다윗은 그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묵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을 밤새워서 묵상했습니다. 어떤 하나님입니까? 그의 방패가 되어주는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어려움이 있을 때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하나님을 묵상했습니까? 나의 영광이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만이 나의 기쁨이요, 명예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다윗에는 그 어떤 기쁨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왕으로서 그 어떤 명예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그 순간 하나님만이 다윗의 기쁨이 되십니다. 하나님만이 명예가 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인생의 어두운 밤에 나에게 아무 것이 없어도 나의 기쁨이 되시고, 나의 영광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윗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인다는 말은 수치와 좌절을 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수치 때문에 머리를 숙인 그의 머리를 드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머리를 들게 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비록 내가 지금 내 머리를 들 수 없는 수치와 좌절가운데 있지만—나의 머리를 숙였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또 나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넘어졌지만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다윗은 인생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을 묵상했을 때 어떤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까? 그를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3:5. 내가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평안히)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인생의 어두운 밤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묵상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붙들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저는 간사 7년 동안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을 밤낮 묵상했습니다.
또 목회를 하고 있는 동안 제일 어렵고 힘들 때 저는 엡1:23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는 말씀을 밤낮 묵상하고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이 땅이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교회가 이 땅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희망이 될 줄 믿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사도요한처럼 어제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밤낮 묵상하시기 바랍니다(계1).
사도바울처럼 마음에 살 소망까지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고난이 넘친 것만큼 위로도 넘치는 하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고후1).
자녀가 없습니까? 또 나는 계속해서 가난하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한나처럼 모든 것을 역전케하시는 하나님을 밤낮으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 쓸쓸하고 외로운 광야라고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모세처럼 광야에서도 나를 안하주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밤낮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내 앞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결혼문제 취업문제 경제문제로 고민하십니까? 그렇다면 신명기1장에 내 앞 길을 먼저 가셔서 내가 있을 곳을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밤낮 묵상하기시기 바랍니다.
내 삶 가운데 선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다윗처럼 나의 평생에 선하시고 인자하신 그 하나님을 밤낮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미래 인생의 말년이 고민이 되십니까? 욥처럼 인생의 말년에 모든 것을 갑절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에 환경 묵상 사람 묵상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묵상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철을 따라서 열매를 맺고, 가무는 해에도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인생의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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