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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선 안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눅10:25-37)

by 금빛돌 2024. 12. 20.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옛날에는 지역 간의 갈등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적 갈등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보수가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진보다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과연 예수님은 어떠하셨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보수주의자였겠습니까? 아니면 진보주의자였겠습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열심당원인 시몬이 있습니다. 열심당원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진보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로마를 무력을 물리쳐야 한다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세리 마태가 있습니다. 세리 마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자였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보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진보주의자냐 그렇다면 진보주의라는 선안에 갇혀 있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또 너는 보주수의자냐 그렇다면 너는 보수주의라는 선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두 선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수주의자라면 보수주의라는 선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유튜브를 통해서 듣고 보는 것이 보수주의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만 옳고 다른 모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또 친구도 모두 보수주의자들입니다.

또 내가 진보주의자라면 진보주의라는 선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듣고 보는 것이 다 진보주의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만 옳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또 친구도 모두 진보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과연 보수주의자입니까? 진보주의자입니까?

예수님은 보수주의라는 선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진보주의라는 선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캇 솔즈는 선 안에 갇힌 인간과 선밖에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갇혀 있는 선 안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선 밖에 계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간이 만든 선 안에 있지 말고 선 밖으로 나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만일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계시다면 대통령을 하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계시다면 사람들이 억지로 붙들고 대통령으로 삼으려고 해도 예수님은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 나라에 속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여러분은 진정한 그리스인이십니까?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십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선에 갇힌 자가 아니라 선 밖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의 선 밖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인간들은 어떤 선에 갇혀 있습니까?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우리가 인간이 갇힌 선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인간들이 갇혀 있는 선이 무엇이며 그 선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인간들은 자신만 옳다고 하는 선에 갇혀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문하십니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 고 반문하십니다,

그러니까 율법 교사가 어떻게 대답합니까?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러니까 또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영생을 얻으리라,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가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대로 한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하여 주님만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가 완전하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 다음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이 사람은 자신이 율법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때 이 율법 교사가 생각한 이웃은 누구였겠습니까?

자신과 가까이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다음 비유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이 부정하고 생각하는 사마리아 사람들도 선한 이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강도 만난 사람도 이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가 율법을 다 지켜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너는 네 이웃을 완전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만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만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대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들은 자신들은 다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율법 교사처럼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완전하게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아가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에 우리 모두는 다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의 생각만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시대의 우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눈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우상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저는 신학교를 다닐 때 제일 감명 깊게 들었던 설교가 조직 신학교수님이었던 이보민교수님의 설교였습니다. 교수님은 우리 모두는 다 생각의 테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테두리를 이데올로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이데아과 올로기의 합성어인데 이데아란 생각을 뜻하고 올로기란 테두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원이 바로 우리 생각의 테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 생각의 테두리를 가지고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의 테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내 생각의 테두리 안에는 모두 선이라고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의 테두리 밖은 모두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의 테두리를 벗어난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다 죽여야 하는 악의 무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 생각의 테두리가 절대적인 선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의 테두리 밖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사람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가장 큰 우상은 생각의 테두리입니다. 이데올로기입니다.

내 생각만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우상입니다. 요즘에는 정치가 종교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정치는 상대적입니다. 이 세상의 정치는 절대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신념을 마치 하나님처럼 무조건 옳다고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우상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2:1. 그러므로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3:9. 그러면 어떠하냐 (예수 믿는)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선에서 우리가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대 나만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더 죄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나는 절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시는 우상에 빠지지 마시기 바립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선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선에서 나와서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으로 서로 용납해 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서는 자유를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 인간들은 어떤 선에 갇혀 있습니까?

둘째, 인간들은 자신들이 친한 이웃의 선에 갇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율법 교사는 누구만을 이웃으로 생각했습니까?

유대인만을 이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이 율법 교사는 제사장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만을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그 이웃들만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아프면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힘들이 같이 아파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 친구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율법 교사는 자신이 친한 이웃의 선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29절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이 사람은 자신의 유대인들만 자신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자신과 같은 종교지도자들만 자신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입장에는 자신은 정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자신이 친한 사람만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친한 친구의 선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옳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도리어 너는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라) 하라 하시니라

내가 친한 이웃의 선을 그어놓고 그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 선을 넘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이웃의 선을 그어놓고, 그 선 안에서 누가 내 이웃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너는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이웃의 예로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에 대해서 제사장도 그를 보고 피하여 갑니다(31). 또 당시 종교적인 직업을 가졌던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32).

그런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입니까? 사마리아 사람입니다(33).

이것은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모욕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북쪽 지방에 살던 사람들로서 이방 사람들과 완전히 동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인간 취급도 하기 싫었습니다. 개보다 못하고 지옥의 불쏘시개인 이방인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개보다 못한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선한 이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내 이웃이 될 것이냐를 생각하지 말고 너는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친한 사람만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친한 이웃의 선을 넘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친한 이웃이 누구입니까?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모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 이웃은 오직 교회 식구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려고 하니까 내 주위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전도 대상자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서 오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만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선을 넘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4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 말씀에서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종인 우리에게 길과 산울타리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산울타리로 나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산울타리가 오늘로 말하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울타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만을 내 이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울타리를 나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선을 넘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이웃의 선을 넘어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의 친구들은 누구였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었겠습니까? 아니면 세리와 죄인들이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친구로 삼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다.

전도주일이 지난 다음에 우리 앞에 빌라 주인을 만났습니다. 평상시에 항상 서로 인사를 주고 받던 사이였습니다. 그분에게 전도주일에 주었던 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교회행사에 꼭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목양지가 어디인가? 내 목양지가 단순히 동부제일교회라고 하는 울타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라면 단순히 동부제일교회만을 목양지로 생각하실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님처럼 동부제일교회만 아니라 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도 내가 돌아보아야 할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에 묵2동 동장님과 복지팀장이 오셨습니다. 2동이 이웃돕기 성금이 최하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동네는 지원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겠다고 했습니다.  또 장로님들도 우리교회 달력을 이웃의 가게들에게 돌리려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또 오늘도 주일학교에서 이웃을 돕기위한 바자회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교회를 다니는 사람만 아니라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하면서 이웃의 선을 긋지 마시고, 모든 사람들의 이웃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우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 인간들은 어떤 선에 갇혀 있습니까?

셋째, 인간들은 인간 한계의 선에 갇혀 있습니다.

십계명 중 2계명에서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내 생각의 틀 속에서 제한시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 경험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제한시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녀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4년이 지나도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99세가 된 아브라함은 자신의 경험을 따라서 인간 한계의 선을 그었습니다. “나는 절대 자녀를 낳을 수 없다. 사라도 절대 자녀를 나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17:1).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100살 때 나타나셔서 너와 사라 사이에 자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때도 아브라함으로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내 나이가 100살이고, 사라가 90살인데 어떻게 자녀를 낳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인간 한계의 선을 그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100살 때 자녀를 주셨습니다.

막9장에서 귀신들린 아이를 둔 아버지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낫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예수님 하실 있으시면 내 아이를 낫게 해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못 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9:23)

우리는 내 경험을 따라서 내 자녀는 절대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절대 변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교회도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할 수 없으니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우리 인간 한계의 선 속에 하나님을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할 수 없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할 수 없다고 하는 인간 한계의 선에서 나에게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을 따라서 인간 한계의 선에 갇혀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인간 한계의 선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기도 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를 보시기 바랍니다. 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인간 한계의 선)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고 합니다.

지금 예레미야가 있는 시위 때 뜰은 인간 한계의 선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 한계의 선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자녀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자녀를 달라고 기도하식시 바랍니다.

여러분 몸이 좋지 않습니까? 병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염려가 있습니까? 걱정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도무지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다른 날은 염려하지 마시고 오직 금요일 날 하루만 염려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여러분이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금요기도회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인간 한계의 선에 안에서 하나님을 가두어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양하시며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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