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기서 예수님께서 왜 세 번 씩이나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다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할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저는 대학다닐 때 중고등부 교사를 할 때부터 이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는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는데, 이 사람들을 이것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대부분 이 질문에 대해서 예 라고 대답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맞기 때문에 정답의 차원에서 그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정답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 된 고백을 원하십니다.
/학생들에게 성경 공부나 훈련이 다 끝나고 나면 항상 이 질문을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 저는 이 세상의 모든 명예와 부귀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고 대답을 합니다.
왜 이렇게 말합니까? 학생들은 부귀영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나는 부귀나 명예나 권세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진실된 고백이 될 수 없습니다.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진로--또는 비전이 제일 우선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합니다. 너는 너의 진로--비전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또 여학생들에게는 네가 사랑하는 애인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쉽게 잘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베드로처럼 마음에 정말 고민하면서 정말 신중하게 예 주님 저는 저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물어 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자존심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은 명예와 명성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봐야 합니다.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물어보십니다.
그런까 어제 자신있게 고백했는데---또 지금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구체적으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내가 진정으로 주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서 교회 나온지 오래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이 질문에 대해서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가지 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독선적이고 편하다-그래서 자기만 사랑하라고 하신다---또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내 직업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버리고--돈도 버리고--가정도 버려야하는가 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이유는 먼저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기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각 지파별로 가나안땅을 기업 즉 소유로 줍니다.
어느 지파는 이 땅을 기업으로 주고, 또 어느 지파는 저 땅을 기업으로 줍니다. 그러면 가나안땅에서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소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소유는 이스라엘-너희들이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땅-어떤 기업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할 때 “나는 너만 사랑하였거늘 왜 네가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느고 물으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래서도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왜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내고 물어십니까?
그 이유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그 아내만을 주님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제 돈이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하니까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한 줄아십니까? 내가 돈이 아니라정말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니까 가장 먼저 내 아내가 가장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더라도 내 아내와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하나님 중심이 되고 말씀 중심이 되니까 비로소 내 가정의 식구들이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내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내 가족을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진실로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면 내 눈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명예, 내 소유내 지위,내 자존심, 내욕망과 욕심--이것이 절대 먼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면—내 눈에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보입니다. 주님에게 내게 맡겨주신 양들이 보입니다. 일이나 사업이나 성공이나 성취, 또는 어떤 결과나 업적이나 내 욕망이 절대 우선시 될 수 없습니다. 또 그 욕심과 성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면--그 사랑의 증거로 우리 눈에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두신 양들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 마음속에 주님이 제일로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내게 주신 양 떼들인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네가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주님이 물으십니다. 그리고 네가 진정으로 나를 더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돌아보고 먹여야 할 양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오늘 본문에 양이란 세 가지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는데 이 양은 헬라어로 아르니아 란 말로서 아주 어린 양을 말합니다. 이 양은 연약하고 어리석고 나보다 더 못한 양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나보다 못하고 연약하고 어린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절대 동정심으로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나보다 못하니까-마치 내가 높은 위치에서 그 사람에게 적선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줄 때 그 사람의 인격과 자존심도 생각해주어야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어린 양들입니다.
마25장에서 나보다 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섬기는 것이 주님을 돌아보고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내 양이란 ”프로바티온“이라고 해서 중간 크기의 양입니다. 나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은 사실 사랑하기 쉽습니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과 내가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나와 같은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도 네가 사랑하고 돌아봐야 할 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마지막 세 번째 양은 프로바타 라고 해서 장성한 양, 큰 양을 말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기에 제일 어려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나 보다 잘 난 사람, 나보다 더 좋은 처지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 풍조 가운데 하나는 조금이라도 잘된 사람이 있으면 질투하여 절대 칭찬하지 못하는 풍토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나보다 더 형편이 더 나은 사람들도 결국 우리가 돌아봐야 할 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사랑 해야 합니다. 또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또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들도 우리가 돌아봐야 할 양들이란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왜 주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지만--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다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여기서 젊다는 것은 주님을 덜 사랑할 때를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덜 사랑할 때는 내가 내 삶에주인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그러나 늙었다는 것은 신앙이 더 성숙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이제는 내가 내 삶에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삶을 살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내 죽음조차도 주님께 맡기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삶은 정말 편한 삶입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진실로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무 염려 근심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내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끌려 다니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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