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도마를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에게 찾아갔습니다. 이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19잘을 보시면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왜 함께 같이 모여 있습니까?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어떤 한 집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도마는 이 곳에 없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려고 유대로 가려고 하셨습니다.
이때 요11장 8절에 “요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고 합니다.
여기서도 보시면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유대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때 도마가 어떤 말을 합니까?
요한복음 11장 16절에 “요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죽음을 두워하는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도마에 대해서 의심 많은 도마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마는 유대인들이 그들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왜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도마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처럼 집에 문을 닫고 숨어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은 먼저 누구에게 찾아갔습니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안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도마에게 주님을 만났던 이야기를 합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러분은 이 도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을 만지며 옆구리를 만져야 믿겠다고 하는 도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 도마에 대해서 단순히 “도마는 의심이 많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직접 보면 믿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면 믿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는 아니더라도 내 삶 가운데 어떤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으면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믿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눈에 보이는 확실한 체험이 있어야 더 잘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도 주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시면 내가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간증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찾아오시는데, 예수님을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여드레를 지나”라고 하는데, 여드레가 몇 일입니까? 팔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은 후 8일입니까? 19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후 8일입니다.
19절에 보시면 그 날이 언제였습니까?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주일 이후에 8일이 지나면 무슨 요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일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숫자 개념입니다. 유대인들을 날짜를 말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이 그 날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오늘 밤 11시에 돌아가시면 그 다음 날이 며칠이 지난 것입니까? 이틀이 지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8일은 그 주일을 포함하기 때문에 주일입니다.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일(1) 월(2) 화(3) 수(4) 목(5) 금(6) 토(7) 주일(8)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언제입니까? 안식 후 첫 날 즉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날 날이 언제입니까? 안식 후 첫 날 즉 주일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집에 숨어 있는 제달을 만나신 날도 언제입니까? 막달라 마리아를 만난 주일 저녁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를 포함해서 다른 제자들을 만나신 날도 언제입니까? 안식 후 첫날인 주일입니다.
또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 계시를 받은 날이 언제입니까? 안식 후 첫날인 주일입니다(계1:10).
그래서 여러분 왜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까?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주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기서 왜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내 손을 만져보고 내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합니까?
도마는 예수님의 손을 만지고, 옆구리를 만지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를 직접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때 도마가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28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지금까지 이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고백을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도마와 같이 예수님이 누구의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을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여기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누구입니까? 우리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활한 나를 직접 보고 믿는 자들보다 부활한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도마보다 더 복 받은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믿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사35: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고 합니다.
사33장 9절을 보시면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다 마르며 쇠잔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 땅의 아름다움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 이 땅 가운데서 조금도 어려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 때문에 이 땅 가운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모든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이 땅 가운데 가득하게 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뜨거운 사막이 변해서 물이 흐르는 못이 될 것이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입니다.
승냥이가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가게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육식동물이 있겠습니까? 육식동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자도 원래는 풀을 먹었습니다. 이리도 풀을 먹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우리에게 영양분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승냥이가 눕던 곳에 풀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자도 풀을 먹고 승냥이도 풀을 먹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사자도 승냥이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는 먹을 풀이 풍성하고 먹을 과일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단순하게 동물 세계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은 왜 매일 싸웁니까? 이 세상이 존재하고 그 세상의 죄가 존재하는 한 이 땅은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면 땅 가운데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일이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 땅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싸울 일도 없습니다. 이런 날이 반드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될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 이것을 누리게 되고 보게 됩니까?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35장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그래서 마지막 재림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날이 오기 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고 합니다.
약한 손은 기도의 손입니다. 떨리는 무릎도 기도하는 무릎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날이 오기 때문에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겁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사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절대로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손을 강하게 하시고 기도의 무릎을 굳게 하심으로 끝까지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비록 이 땅을 살아가는 가운데서는 잠시 괴로움이고 잠시 슬픔이고 잠시 탄식이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 영원한 노래가 있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씩씩하고 힘 있게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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