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사야가 병이 들었다가 나은때 기록한 글입니다(9.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은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만일에 우리가 죽을 병이 걸려 있다면 하나님께 왜 나를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몸이 아플때 왜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합니까?
왜 우리가 죽지 않고 있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은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히스기야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히스기야는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중년의 때에 죽음의 위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스올으 문은 죽음의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중년의 때에 나의 죽음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년의 때에 왜 내가 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11).
11.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내가 죽으면 산자의 땅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지 않습니까? 고 합니다.
여러분 왜 살아야 합니까? 왜 이 땅 가운데서 내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함입니다. 산자의 땅에서 살아있는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삶과 죽음 두 사이에 끼었으니 내가 오히려 죽어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있는 것이 더 좋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빌1:25).
그런데 지금 히스기야는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
그래서 여러분들도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이 땅 가운데서 나를 살려주시고 내 생명을 건강하게 연장시켜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서 지금 히스기야는 어떻게 합니까 15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히스기야는 눈이 쇠하도록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합니까?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것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라고 합니다.
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주님께서 내게 큰 고통을 주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잠시 육신의 고통을 주신 것을 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날 죽이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를 치료하시고 나를 깨끗케 하시려고 이 병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내게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입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셔서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죽음 구렁텅이에서 건드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졌나이다 고 합니다.
18.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스올에서는 주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사망에서는 주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죽음의 구덩이에 들어간 자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19절입니다.
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송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합니다. 죽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또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주의 신실함을 아버지가 자녀에게 알리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20절 보십시오.
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죽음에서 건져주시리니 내가 이제 살아어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할 것입니다 고 말합니다.
여러분들 왜 우리가 살아야 합니까? 왜 우리가 건강해야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왜 나를 살려주셔야 합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함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 목적밖에 없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여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옵소서 내 건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내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 육신의 건강을 회복하여서 힘 있게 주님을 찬송하고 하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며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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