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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새벽기도

듣지 않는 유다백성(사28:1-13)

by 금빛돌 2024. 8. 17.


이사야 1장부터 12장까지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3장부터 23장까지는 유다 주위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장부터 27장까지는 전 세계적인 종말과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28장부터 39장까지는 다시 유다 나라에 관한 메시지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12장까지 유다에 관한 메시지를 전할 때 그때 왕이 누구였습니까? 아하스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28장부터 39장까지는 히스기야가 유다 왕으로 있을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역사에서 교훈을 얻겠습니까?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에서서 교훈을 얻었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시 그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지금 28장부터 말하고 있는 유다의 형편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 백성을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역사를 통해서 많은 교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되는가를 유다 백성들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1절부터 6절까지를 보시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했는가를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1절에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멸망했습니까?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멸망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제일 좋을 때 교만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시면 보게 " 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백성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북쪽 이스라엘을 보라는 것입니다. 잘 살 때 교만하여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아 멸망받지 않았느냐 이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렇게 지금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고 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TV 뉴스를 보면서 무엇을 보십니까?

가수 김호중이라는 사람이 가장 잘 될 때 공연을 앞두고 술을 먹고 비틀거리다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어떤 영화 배우도 가장 잘 나갈 때 방심하다가 엉뚱한 곳에 빠져서 죽는 것을 보지 않았으니까?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아 그렇구나 우리가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되고는 술 취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교만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유다가 똑같은 형태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북쪽에 이스라엘을 보라 교만하다가 그 교만의 면류관이 밟힌 것을 보지 않았느냐 이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그래서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그러니까 지금 북 왕국 이스라엘이 술취해 망한 것을 보고도 지금 남왕국 유다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들도 술 취해 비틀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제사장도 그렇고 선지자도 술독에 빠져가지고 환상도 잘못 풀고 재판할 때도 실수하고 있습니다.모든 상에는 술 먹고 토한 것이 가득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과 선지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유다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백성들도 지금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선자자들이 술독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유다백성들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9절입니다.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그들이(유다백성) 이르기를 그(선지자)가 누구에게 지식(말씀)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말씀)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어린 아이)들에게 하려는가

지금 유다백성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선지자가 누구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선지자가 누구에게 말씀을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선지자가 우리를 마치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어린 아이 취급하려는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선지자라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당신이 누군데 우리에게 지식을 가리키며 당신이 누군데 우리에게 말씀을 가리키려고 하는가 우리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어린 애인 줄 아느냐 우리를 애 취급하지 말라"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 유다백성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10 절입니다.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여러분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경계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살면 망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고 경계하는 것 아닙니까 또 교훈 말씀을 전하여 그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유다 백성들이 조롱하고 있습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또 경계에 경게를 더하하고 또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여기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왜 계속 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전하느냐 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지가들이 하는 말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유대백성들에게 하신 첫째 말씀이 무엇입니까?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교만해서 멸망당한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지도자들이 술취해 있고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하나님은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안 들 때는 내 백성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유다백성들을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십니까? 이제는 알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안들으니까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십니다.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전에 하셨던 말씀을 하십니다. 전에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너희의 안식이요 상쾌함이 아니었느냐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듣디 아니하였음으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깨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해 상쾌함을 주고 안식과 힘을 주기 위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주고 능력을 주고 우리를 살리기 위합니다. 그런게 그 말씀을 안 듣습니다. 말씀도 안 듣고 교훈도 안 받습니다. 도무지 알아듣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똑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하나님 말씀은 새로운 말씀이 없습니다.  유다백성들은 말씀을 조롱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조롱하는 말씀을 똑 같이 전하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붙잡히게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교훈이 주십니다. TV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교만에 빠져나가야 되겠구나 잘 될 때 조심해야 되겠구나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같은 말씀하십니다 경계하는 말씀을하십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안식을 주기 위함입니다. 힘을 주기 위함이고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잘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이 왜 있습니까? 우리가 유다 백성들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백성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참된 백성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상쾌함을 얻고 새 힘을 얻고 안식을 얻고 삶의 용기를 얻어 말씀에 따른 온전한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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