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찬송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전부터 선택해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선택받은 증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제일 첫 번째 증거는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라 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증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증거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4절에 보시면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이미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신분적 차원에서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생활적 구원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스니다. 또 천국 시민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신분이 되었고, 천국 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우리의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여전히 우리가 더럽고 깨끗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신분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생활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가 신분상으로는 의인이 되었지만 우리의 생활은 의인다운 생활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가 신분상으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우리의 생활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생활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가 신분상으로는 천국시민이 되었지만--우리의 생활은 천국시민의 생활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는 어떻게 말합니까?
“너희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을 신분적 차원에서의 구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절대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신분적으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생활에 있어서도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말씀하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우리를 만세전부터 선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절대 우리의 신분만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분상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에 있어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또 세 번째는 영화의 차원에서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구원받은 흰옷을 입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흰옷은 두 가지로 표현이 됩니다. 거기서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희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는 흰옷이 예수님의 피로 씻어 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9장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19: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
여기서 세마포는 깨끗한 흰옷인데 무엇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된 것만 아니라, 성도의 옳은 행실로서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저 영원한 천국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된 흰옷을 입음과 동시에 또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도 완전하게 깨끗하게 된 자로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신분적 차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현재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생활적 차원에서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또 미래의 천국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도 완벽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의 차원에서 우리가 받을 구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우리는 신분적 차원에서 구원을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분명히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영화의 차원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는 무엇에 힘을 더 써야 합니까?
생활적 차원에서의 구원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값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구원하셨습니까?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선택과 구원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거룩이란 어떤 것입니까?
1. 먼저 거룩이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거룩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거룩, 거룩하면 가장 먼저 올려지는 것이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거룩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거룩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거룩이라고 하면, 어떤 형식적이고, 외적인 면에서의 거룩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거룩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종교가 타락할수록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갖가지의 형식적이고 외적인 거룩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형식적인 거룩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사악함과 죄악에 몸서리쳐 하시며,,, 한시도 그것 때문에 참지 못하시며 잠을 못 이루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외형적이고 외식적인 거룩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장소의 차이를 두고 거룩을 구분합니다. 어떤 장소는 거룩하고 또 다른 장소는 부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당은 무조건 거룩하고, 세상은 부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하나님께 예배할 곳이 이제 예루살렘이나 다른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어디서라도 영과 진리로 예배할 자를 찾으신다고 하십니다. 이 온 세상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고,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거룩하게 살 것이 아니라,,시장 바닥에서나 차안에서 길거리에서나 항상 거룩한 하나님을 모신 그곳이 거룩하니까 그 하나님앞에 거룩하게 살아야합니다
또 우리는 어떤 특정한 종교적인 직업은 가지면 거룩하고, 장사고 돈을 벌이는 것은 거룩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칼빈은 성직이나 세상직업이나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거룩이란 우리가 세상을 도피하고 사람들을 떠나 사는 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떠난다고 해서 세상을 떠난다고 해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거룩이란 단순히 외형적인고, 형식적인 거룩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참된 거룩이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세상 속에 거하면서, 그 세상 사람들과 무언가 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택함을 받은 자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거룩이란 어떤 것입니까?
1)생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합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5년을 공부해서 사법고시를 합격해서 지금 판사로 재직 중인데 그때 그 청년은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 친구가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공부하는 5년 동안 한 가지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속으로 생각하기를 “빨리 합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5년 공부하면서 저의 제일 첫 번째 기도제목은 주일성수입니다. 그냥 예배만 참석하는 정도의 주일성수가 아니라, 남들과 같이 교회봉사하고 활동하는 모든 것을 하고 시험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선배들을 보니까 그렇게 주일성수를 다 하면 대부분 몇 년씩 합격이 늦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합격이 늦더라도 나는 주일만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공부를 끝까지 하는 것이 합격하는 것보다 더 큰 기도제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합격한 것보다 감사한 것은 그 기도제목대로 잘 실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제가 물었습니다. 앞으로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아주 크게 고민하면서 저는 정말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제게 좋은 도구를 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그것이 고민이라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목사인 저 자신부터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그 친구와 말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떠 올려 지게 된 단어가 “출세와 성공, 그리고 부와 명성”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완전히 생각이 달랐습니다. 정말 친구가 정말 거룩한 청년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먼저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과는 다른 성공관을 가져합니다. 여러분 세상사람들이 가지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돈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의 성공관은 얼마나 그 사람이 예수님의 낮아지시고 섬기시는 모습을 닮았느냐에 있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물질이 부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위가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성공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격과 삶속에서 정말 예수님의 닮은 모습이 있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성공한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과는 다른 천국의 사고방식,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두번 째 우리가 추구해야할 거룩은 마음의 거룩입니다. 슥7:5,6에 보면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매년 5월과 7월에 전통적으로 애통하며, 금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나를 위해 나를 위해 한것이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희의 애통하며 금식함이 자기를 위하여 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금식하고 철야하고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 하더라도,,,,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주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금 그릇이 있고 은그릇이 있고 동 그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릇 중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동기로 하나님을 섬겨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깨끗하고 순수한 동기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세 번 째, 우리는 하나님백성으로서 언어에 있어서도 거룩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다 종교적인 일들인데, 유일하게 우리 입술은 거룩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보고 제일 먼저 회개한 것은 입술의 부정이었습니다-----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신앙인격을 나타냅니다--내가 아무리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우리의 말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낙심을 주고 상처를 준다면--결코 그 사람은 결코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하나님 앞에서 말이 내 언어가--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그 말은 부흥사처럼 쉰 목소를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는 말들이 서로 하나님백성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세워주는 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참된 거룩은 내가 어떤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내 모든 삶속에-- 인격 속에--예수님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바울처럼 내 심장이 도려지고--내 안에 예수님의 심장을 가져야합니다-----그래서 모든 일을 할 때 예수님의 심장으로--예수님의 눈으로--모든 일을 해야합니다--그런데 이것은 한순간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조금씩 죽어 가야합니다.
-그래서 내 삶속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형상들이 날마다 나타나길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며--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그 모든 복들을 예수님과 함께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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