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기도문가운데 “나라가 임하시오며”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맨 먼저 하신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막1:15).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성도님들에게 많이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부활)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수십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지금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세상이 끝이 나야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교회 성도님들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이 끝이 나야 옵니다. 또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벌써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벌써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곳에 벌써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찬송가 438장입니다. 설교 마치고도 불러보겠지만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438. 내 영혼이 은총입어
(1)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주의얼굴 뵙기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예수 모신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저는 이 찬송가를 화장실 앞에서 금요일 밤마다 1년 동안 불렀습니다. 옛날 화장실은 지금과 다릅니다. 냄새가 그대로 납니다. 그리고 위에는 지붕 처마였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다른 집 담장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어야 않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덮고 냄새가 나고 겨울에는 추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이 찬송을 부르면서 처음으로 하늘나라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이 곳에 벌써 임하였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맘 속에 예수님을 모신 그곳이 하늘나라이며 하나님 나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을 모신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곳에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나온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에서도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이다 고 합니다.
내 가정에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 고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투고 싸웁니다.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하나님 나라가 벌써 이 곳에 임하였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예수님을 여러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주로 모신 곳이면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심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벌써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셨음을 믿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요셉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셉은 창45장 8절에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인도한)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시80:1)”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요셉과 같이 주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가만히 두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생애를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들을 보고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 가운데 언제 그와 함께 하셨습니까?
언제 그의 삶을 인도하셨습니까?
우리는 죄수였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순간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억울하게 애굽으로 팔려 간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만일 애굽으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 간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다가 감옥에 간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감옥에 가지 않았으면 술 맡은 관원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바로 앞에 서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셉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도 그와 함께 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것도 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무수한 고난, 슬픔, 고통,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많은 아픔조차도 다 하나님의 주관하고 인도하심임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은 절대 좋은 것만 주시지 않습니다. 처음 초신자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좋은 것만 주십니다. 그래서 초신자 때는 우리가 육신적으로 무엇을 구해도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계속해서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광야가 어떤 광야입니까? 우리를 눈물양식으로 먹이시는 광야입니다. 도무지 우리의 힘으로는 살수 없는 고난의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모든 고난의 광야를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눈물이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그 모든 눈물을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벌써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셋째,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실 때 제일 많이 사용하신 비유가 하나님나라는 잔치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잔치는 무엇을 나타낸다고 했습니까? 잔치는 배부름과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배부름을 통한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 임하여진 하나님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충만과 기쁨입니다. 충만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충만이란 가득 차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충만이란 흘러넘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안으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과 은혜가 충만하신 결과로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말로 다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벌써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새사람이 됨으로 현재 임하여진 하나님나라를 맛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게 될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게 될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 만이겠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에 맞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여전히 옛 사람의 모습이라면, 참된 하나님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새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먼저 육체가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는 우리가 전혀 병들지도 않고 장애도 없는 완전한 육체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육체와 함께 새로운 인격과 마음을 가진 새 사람입니다.
이 새 사람은 결국 누구의 마음과 누구의 마음을 닮을 사람이겠습니까?
그것은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나 라에서는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을 닮은 완전한 새 사람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어떻게 장차올 하나님 나라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을 닮은 새 사람이 되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은 곳에 있다 하더라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 내고 원망 불평만 한다면 결코 그곳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없습니다.
그곳은 지옥와 같습니다.
그런데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바로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매일 서로가 서로에게 왕노릇이 아니라 종 노릇하며 살아간다면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허물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싸주고 용서해 준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매일 서로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살아간다면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매일 원망대신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의 옛 자아가 십자가와 함께 죽고, 내가 예수님을 닮은 새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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