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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

by 금빛돌 2024. 4. 24.

주기도문은 의미 없이 외우는 주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말은 하늘에 계신이지만 원문에서는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왜 아버지가 제일 먼저 나옵니까? 기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의 정성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말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말이 통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그 어떤 기도도 들어주십니다.

말을 너무 잘하는 유명한 강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가 하면 그분의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말을 잘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도 아버지는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친근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은 말을 잘하는 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아버지이지만 자녀의 말을 잘 들어주는가 했을 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반성을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가 기도할 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요즘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응답이 없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구한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것은 내가 원했던 이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못된 기도라도 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만일 잘못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자녀가 그 어떤 기도를 해도 반드시 들어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늘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하늘이 저 창공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가기 위해서 저 우주 너머로 가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소련의 우주비행사는 우주에 가보니 하나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우주에 가보니 하나님이 만드신 지구가 너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란 저 창공이 아닙니다. 영어로 말하면 하늘은 sky사 아니라 heaven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영적 세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의 영적 세계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의 영적 세계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5: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늘의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만일 하늘이 저 우주 너머에 있다면 사도요한이 얼마나 눈이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성경에서 하늘이란 저 우주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늘의 영적 세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늘의 영적 세계가 이 세상과 관계없는 세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늘의 영적 세계는 마치 연극무대의 커튼 뒤와 같습니다. 여러분 만일 이곳이 연극무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극무대 뒤에 연극을 감독하는 감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뒤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연극무대는 저 커튼 뒤에 있는 감독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하늘을 보니까 그곳에 무엇이 보였습니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살던 세상이 비록 로마 황제가 다스리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2장에 보면 느헤미야가 왕 앞에 있을 때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만일 이 하늘이 우주 너머의 하늘이라면 어떻게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왕과 대화를 하다가 어떻게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성벽을 건설하러 가라고 합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준비해 주고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설하다가 16년 동안 중단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라고 합니다.

또 성벽 건설을 방해하던 무리들이 너희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이냐 라고 하니까 느헤미야가 어떻게 말합니까? 2: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러니까 여러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저 우주에 계시다 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어디서나 계시는 분이라는 말 입니다. 하늘의 영적 세계에 계신 하나님은 지금 눈이 보이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특히 성경에서 하늘의 세계를 언제 보여주시는 줄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을 둘 수 없을 때입니다.

사도 요한의 경우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를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7교회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 하나님은 하늘의 영적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도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그 어디를 보더라도 희망이 없어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영적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들이 그 어디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늘의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지금도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곳에서만 아니라 이 세상의 그 어떤 곳이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라도 하나님을 찾으시면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도 여러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냥 듣고 계시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여러분들을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여러분 옆에 계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특히 어려울 때 여러분 곁에 더 가까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나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어디에서나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입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단순히 하나님을 나만의 하나님이라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나의 아픔만 아니라 우리의 아픔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기도 제목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 제목도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는데, 새가족 성도님의 딸의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 오늘 아버지께, 11월에는 학습세례 받으시길 권면드렸습니다. 그리고 조상에 대한 제사는 헛된 믿음이라고. 드리시지 마시기를 말씀드렸습니다. 11월에 엄마는 세례를, 아빠. 동생 건우는 학습 받을 수 있게 기도 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도 기도를 할 때 얼마나 우리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나의 경우에도 나의 기도 제목만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 고 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지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할 때 그분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가운데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녀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기도 수첩에도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을 적었는데, 대부분 자녀의 신앙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는 중보기도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에서 나만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열 자녀가 있습니다. 10 손가락이 깨물면 하나도 아프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하나도 귀하지 않은 자녀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버지는 그래도 그 중에서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겠습니까?

10자녀 중에서 그래도 약한 자녀에게 더 마음이 가 있습니다.

나막신과 짚신 장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말합니다. 아버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짚신 장수 아들을 생각하시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나막신 장수 아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는 날에는 짚신 장수 아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막신 장수 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의 친구는 주로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입니까? 했을 때 예수님은 어떤 비유를 하십니까?

우리는 보통 탕자의 비유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한 아들은 집에 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아들은 집에서 떠났습니다.

이때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집을 나간 아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집 안에 있는 자녀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는 집 밖을 떠난 자녀에게 더 관심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특히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 가운데 더 약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특별히 하나님 아버지는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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